“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주님의 영이 머무는 사람.
주님이 오신다면 어떤 선물을 나에게 주시면 좋을까요?
주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을 일컬어 은총이라고 하는데
주님은 은총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하니 말입니다.
가장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재물을 주시면 좋을까요?
아니,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하는 것처럼
재물이 주어지기보다는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면 좋지 않을까요?
아니, 나에게 그까짓 소유물을 주시는 것보다는 나라는 존재가 영육 간에
아름다워진다거나 건강해지는 은총을 주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지요. 병든 몸에 재물이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고,
온전치 않는 정신에 재물이 많으면 뭔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영육이 건강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더 큰 은총이고,
그러기 위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내리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얘기지요.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 아비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 아니 가장 좋은 것인 성령을 주신다고 하지요.
그런데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 왜 가장 좋은 것인가요?
그거야 성령만이 우리를 가장 만족케 하고 그래서 충만케 되기 때문일 텐데
우리가 성령으로 인해 충만한 행복을 누리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자주 외는 시편은 ‘주님이 얼마나 좋은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으라.’고
하는데 지혜와 슬기의 영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먼저 맛보고 깨닫게 되는 거지요.
이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주님께서 제일 먼저 맛보셨고 주님만 아시는 건데
주님의 오심과 함께 주님의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맛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먼저 맛보고 깨달은 사람은
그 행복을 자기만 독점하면 안 됩니다.
제가 수도생활과 관련하여 자주 얘기하는 것이
수도자란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선취先取하는 자, 곧 먼저 소유하는 자이고,
선취한 행복을 아직 모르는 사람에게 증거 하는 사람이라는 거지요.
사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그 행복을 가둘 수 없습니다.
가둘 수 있는 행복은 아직 차고 넘치는 것이 아니고
차고 넘치는 것이 아니라면 참 행복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증거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증거 하기 위해 무슨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둘 수 없을 만큼 차고도 넘치는 것이 그냥 행복의 증거가 되는 거지요.
달리 말하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고,
나를 충만케 하시는 성령께서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참 좋겠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충만한 만족을 주는 묵상을 하였는데
여러분께는 난삽한 묵상 나눔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여러분도 오늘 성령을 오실 주님의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머무시는 오늘, 마음 활짝 열어 모셔들여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