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님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 복음에서 우리는
사람의 아들이 우리의 속량을 위해서
우리의 해방을 위해서
오실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고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의 오심은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마치
하느님을 믿는 사람에게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성탄절이 다가오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오심이
우리에게 하느님의 구원이 되려면,
주님께서 오시는 것에
우리가 그분을 맞아들이는 것이
함께 해야 합니다.
요한 복음의 로고스 찬가에서도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그 빛을 알아보고 그 빛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 작업을 오늘 복음은
회개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길을
조금은 더 짧고 조금은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는
우리가 주님께 다시 얼굴을 돌리고
주님께 향하는 것을 이야기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등을 지고 있어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께 등을 지고 있으면,
주님께서 돌아 오셔야 하기 때문에,
그 만남이 조금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주님께 향하려고 노력할 때,
주님과의 만남은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께 향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는 마음도 아니고,
나를 드러내려 하는 마음도 아닐 것입니다.
내가 부족한 존재임을 알기에
그 부족함을 채워주실 주님을 찾고,
내가 연약한 존재임을 알기에
그 연약함을 지지해 주실 주님께 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맞이한다는 것은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아보는 것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인간의 약함 속으로 주님께서 오십니다.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피조물이 되어 오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연약함을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연약함을 사랑하시기에
그 연약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연약함 속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 각자는 각자의 연약함을 바라보며
그것을 지지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주님께
우리의 얼굴을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 복음에서 우리는
사람의 아들이 우리의 속량을 위해서
우리의 해방을 위해서
오실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고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의 오심은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마치
하느님을 믿는 사람에게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성탄절이 다가오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오심이
우리에게 하느님의 구원이 되려면,
주님께서 오시는 것에
우리가 그분을 맞아들이는 것이
함께 해야 합니다.
요한 복음의 로고스 찬가에서도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그 빛을 알아보고 그 빛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 작업을 오늘 복음은
회개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길을
조금은 더 짧고 조금은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는
우리가 주님께 다시 얼굴을 돌리고
주님께 향하는 것을 이야기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등을 지고 있어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께 등을 지고 있으면,
주님께서 돌아 오셔야 하기 때문에,
그 만남이 조금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주님께 향하려고 노력할 때,
주님과의 만남은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께 향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는 마음도 아니고,
나를 드러내려 하는 마음도 아닐 것입니다.
내가 부족한 존재임을 알기에
그 부족함을 채워주실 주님을 찾고,
내가 연약한 존재임을 알기에
그 연약함을 지지해 주실 주님께 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맞이한다는 것은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아보는 것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인간의 약함 속으로 주님께서 오십니다.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피조물이 되어 오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연약함을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연약함을 사랑하시기에
그 연약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연약함 속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 각자는 각자의 연약함을 바라보며
그것을 지지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주님께
우리의 얼굴을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