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정동 수도원에는 매 주일마다 혼배미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아마 오늘도 수도원은 왁자지껄 할 겁니다.
결혼식을 보면 결혼하는 당사자들이야 당연하겠지만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에도 행복이 가득함을 볼 수 있습니다
방안에 곱게 모셔두었던 한복과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신랑 신부의 가족들,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멋진 예복을 입은 신랑에 뒤질세라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한 껏 멋을 낸 당사자의 친구들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
삼삼 오오 모여 그간의 안부를 묻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
이러한 여러 가지가 모여서 결혼이라는 잔치를 완성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잔치, 하늘 나라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잔치도 이렇게 풍성하고 먹을 것 많고 행복한데,
하느님께서 여시는 잔치는 얼마나 대단할지 비교도 안 될 것입니다.
이 잔치는 오늘 1독서의 이사야의 예언처럼 다른 어디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이 산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잔치이며,
모든 겨레들과 모든 민족들을 위한 잔치이고,
죽음을 영원히 없애주시고, 우리의 희망을 완성해주는 구원의 잔치입니다.(참조:이사 25,6-10ㄱ)
이 예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4,17) 하고 선포하셨습니다.
교회는 이 하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와 있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하늘 나라는 이미 와 있고, 잔치는 이미 시작해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하고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태어났고 이 세상으로 초대되었으며, 당신께서 베푸신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초대받은 이들은 자기 일을 찾아 잔치에 가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하늘나라의 잔치는 관심 밖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잃고 있음은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주님께서 베푸시는 혼인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그 잔치는 더 이상 잔치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 잔치에 초대 받아서 참석한 사람들이라도 예복을 갖추어 입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
우리가 입어야할 예복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오로는 바로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잔치에 초대받은 우리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피 4,12-13)
결국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님께 되돌아감이고, 그분으로 향한 방향전환이고, 회개입니다.
바오로는 주님께 돌아가고 그분께 방향을 전환하고 회개함으로써 그분잔치에 참여했고, 힘을 얻었습니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과연 이 세상이 주님께서 마련해주시고 베풀어주시는 혼인잔치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들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요?
결혼식에서 들려야 할 웃음소리는 어디로 갔나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행복한 사나이였고,
모든 이에게 배척당할 때에도 그들을 사랑한 사나이였습니다.
이런 그가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잔치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이제 자기목소리만 들으며 혼인잔치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겠습니다.
아무 옷이나 대충 걸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입고(갈라 3,27) 잔치에 가야겠습니다.
그분의 잔치는 지금 여기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되었고,
우리의 참여로 인해 풍성해지고
그분께서 행복이라는 선물로 우리 안에서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필리 4,19)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오늘도 수도원은 왁자지껄 할 겁니다.
결혼식을 보면 결혼하는 당사자들이야 당연하겠지만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에도 행복이 가득함을 볼 수 있습니다
방안에 곱게 모셔두었던 한복과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신랑 신부의 가족들,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멋진 예복을 입은 신랑에 뒤질세라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한 껏 멋을 낸 당사자의 친구들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
삼삼 오오 모여 그간의 안부를 묻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
이러한 여러 가지가 모여서 결혼이라는 잔치를 완성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잔치, 하늘 나라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잔치도 이렇게 풍성하고 먹을 것 많고 행복한데,
하느님께서 여시는 잔치는 얼마나 대단할지 비교도 안 될 것입니다.
이 잔치는 오늘 1독서의 이사야의 예언처럼 다른 어디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이 산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잔치이며,
모든 겨레들과 모든 민족들을 위한 잔치이고,
죽음을 영원히 없애주시고, 우리의 희망을 완성해주는 구원의 잔치입니다.(참조:이사 25,6-10ㄱ)
이 예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4,17) 하고 선포하셨습니다.
교회는 이 하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와 있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하늘 나라는 이미 와 있고, 잔치는 이미 시작해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하고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태어났고 이 세상으로 초대되었으며, 당신께서 베푸신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초대받은 이들은 자기 일을 찾아 잔치에 가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하늘나라의 잔치는 관심 밖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잃고 있음은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주님께서 베푸시는 혼인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그 잔치는 더 이상 잔치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 잔치에 초대 받아서 참석한 사람들이라도 예복을 갖추어 입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
우리가 입어야할 예복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오로는 바로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잔치에 초대받은 우리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피 4,12-13)
결국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님께 되돌아감이고, 그분으로 향한 방향전환이고, 회개입니다.
바오로는 주님께 돌아가고 그분께 방향을 전환하고 회개함으로써 그분잔치에 참여했고, 힘을 얻었습니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과연 이 세상이 주님께서 마련해주시고 베풀어주시는 혼인잔치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들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요?
결혼식에서 들려야 할 웃음소리는 어디로 갔나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행복한 사나이였고,
모든 이에게 배척당할 때에도 그들을 사랑한 사나이였습니다.
이런 그가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잔치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이제 자기목소리만 들으며 혼인잔치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겠습니다.
아무 옷이나 대충 걸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입고(갈라 3,27) 잔치에 가야겠습니다.
그분의 잔치는 지금 여기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되었고,
우리의 참여로 인해 풍성해지고
그분께서 행복이라는 선물로 우리 안에서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필리 4,19)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 가는 것이라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이미 참 행복을 주시기 때문인 아닌가 싶습니다.
혼인잔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