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어제 저희 수도회 선교 후원회 감사제가 있었고
감사미사의 주례를 저희 관구장님께서 하셨습니다.
어제 복음이 마리아가 성령으로 주님을 잉태하게 된 얘기였기에
가브리엘 천사가 한 말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을 가지고 강론을 하셨는데
강론의 서두에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였기에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총을 받았기에 좋은 일을 많이 한 것이다.’는 요지입니다.
그리고 틱낙한 스님의 말씀도 인용하였는데
틱낙한 스님은 성령을 ‘Mindfulness’라고 풀이했다면서
우리가 무엇을 온 마음을 다해 하면 거기에 하느님,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는 뜻으로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주님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어제의 복음과 오늘의 복음을 연결시켜 얘기하면
마리아가 복되시고 태중의 아들 곧 주님도 복되신 것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행복하다는 뜻이고
은총 중의 은총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은총이라는 것이 됩니다.
여기서 저는 이런 묵상을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은총을 주시는 분이시고,
그러기에 은총도 치유나 부귀영화의 은총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은총,
성령으로 충만함이 은총 중의 은총이요 행복 중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도 성령으로 가득 차
마리아께 나도 복되지만 당신은 더 복되시다는 투로 외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총을 받아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는 앞의 얘기로 돌아가 묵상을 더 하면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하려고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잘 해야 할 것은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걔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서 좋은 일을 하시는 것이지만 하느님께서 좋은 일을 하시도록
빈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잘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집으로 치면 빈집이 되는 것이고,
사람으로 가득 찬 여관이 아니라 비어있는 외양간과 구유가 되는 것이며,
마리아처럼 주님만을 위해 비어둔 정결한 자궁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녀 클라라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동정녀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태중인 작은 봉쇄 안에 그분을 모셨고,
처녀의 품으로 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나의 태胎는 어떤 태인지 성찰하고
지금까지는 혹시 나의 태가 욕심을 잉태하고 애착을 품었다면
이제 성탄을 코앞에 둔 며칠만이라도
욕심도 비어내고,
근심도 비어내고,
애착도 비어내어
주님이 그 안에 계시는 정결한 태가 되게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