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요한의 편지는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하느님께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청해서 받은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 ‘정말로?’하게 합니다.
그런데 다 받게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그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청하는 것은 그분에게서 다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면
하느님도 우리의 청을 다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청해도 안 들어주시고, 반대로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은 뭐든 다 들어주신다는 말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을 인간화하는 것이지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의 요청은 들어주는 우리처럼 이해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가 주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당신 계명이라고 하시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주님 마음에 들고
그럴 때 우리의 청도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더 이어지는 말씀은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고
주님도 우리 안에 머무신다고 하시는데 이 말씀도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도 주님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다 종합하면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면 우리가 청하는 것도 사랑의 청일 테니
그 사랑의 청은 다 들어주신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주님의 사랑과 반대되는 청을 하면 안 들어주시지요.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며 그는 망하고
나는 흥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안 들어주신다는 말씀이고,
사랑에서 비롯된 기도를 하면 다 들어주신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경험을 보면 이 말도 ‘정말로?’라고 갸웃하게 합니다.
제가 매일같이 환자들이나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어떤 분들은 10년 넘게 기도하지만 그 병이 나은 분들이 드문데
그렇다면 제 기도가 사랑의 기도가 아니거나 사랑이 부족해서입니까?
제 사랑이 부족해서 안 들어주신다면 하느님의 사랑도 부족합니다.
내 사랑은 부족해도 하느님의 사랑은 부족하지 않아
당신의 큰 사랑으로 청을 들어주셔야지 하느님의 사랑이지요.
그러니까 제 사랑으로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느님의 사랑으로 들어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
이라는 앞의 말로 돌아가 다시 정리를 해보면
우리는 우리 사랑보다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을 하면 되고 사랑의 청을 드리면 됩니다.
나머지는 우리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큰 사랑에 그를 맡기면 됩니다.
내가 내 아들을 제일 사랑하는 줄 알지만 그런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믿고 특히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내 아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느님이 내 아들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그렇게 믿지 않으면 아무리 믿는다고 말해도 결국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사랑하여 그를 위해 기도한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그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육체의 병이 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혼의 병이 낫는 것이고,
그래서 오늘 주님은 공생활의 제일 첫 번째 말씀으로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라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시는 아니겠습니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