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연중 제 2 주일까지 공현과 공생활 시작이 겹쳐지는 의미를 기념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공현축일은 세 가지를 기념하지요.
동방박사들의 방문 때 주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심,
세례 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드러내심,
그리고 카나 혼인잔치의 기적에서 당신을 드러내심.
그래서 동방박사가 방문하는 공현축일을 지내고 연중시기를 시작하면서
지난주일은 주님의 세례축일을 지냈고,
이번 주일은 카나 혼인잔치의 기적 얘기를 우리는 듣는데 요한복음은
이 기적을 통해서 주님께서 당신 영광을 드러내셨다고 의미부여를 하지요.
그런데 정말 그런 겁니까?
주님께서 당신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기적을 행하신 겁니까?
아니면, 다른 이유로 기적을 하셨는데 결과적으로 영광이 드러난 겁니까?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나 곤란을 해결해주라는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에 의한 것이고,
그것은 결국 사람을 일으키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것부터
하늘에서는 영광을 받지 못하시니 땅에 와서
왕 노릇이나 하며 영광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러기에 잔칫집에 가신 것도 여느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여느 사람들처럼 먹고 마심으로써 기를 세워주시기 위한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먹지 않는 세례자 요한과 비교가 되며 먹보요 술꾼이라는
비판을 받으셨는데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심이 사실은 사랑이지요.
그래서 제가 옛날 잠깐 본당에 있을 때 옆 교회 목사님이 찾아와
성경에 술 먹지 말라고 하는데 왜 천주교 신부는 술을 먹느냐는 비난에
저는 원래 먹보요 술꾼이지만 같은 얘기를 하여 반박을 한 적이 있지요.
보기 나름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괜히 분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느냐,
병자를 일으키고 사람들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느냐는 사람 나름인데,
그저께 읽은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중풍병자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분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며 비난을 하지만
사람들은 병자를 일으키시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예수님을 비난하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면서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인간 예수를 보는데 사람들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며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기적을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쯤으로 보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병자를 일으키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 얘기하지만 오늘 주님께서 혼인잔치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도
당신이 영광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영광되게 하기 위한 겁니다.
이것을 오늘 독서 이사야서는 이렇게 얘기하지요.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기뻐하시리라.”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 혼인잔치에 참여하심은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아내로 맞아들이시어 영광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주님을 신랑으로 사랑해야 함은 물론이고,
하느님께는 찬양 드리고 주님께는 영광 드려야겠지요?
철이 없을 때는, 아니, 지금도 여전히 철이 없지만...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는 부분이 늘 제 마음속에서 불편함으로 올라오곤 했었습니다.
마음의 눈이 조금 씩 열리면서 그 불편한 마음은 이기심에서 올라오는
왜곡된 해석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지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는 말씀을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본능으로 해석하면
이기적인 인간의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거지요.
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고 하느님의 뜻이 제 삶의 태도로 드러날 때
다른 이가 하느님을 믿을 수 있게 되면 저도 기쁘고 하느님께서도 기쁨이 된다는,
자기 경험적인 차원에서 우러나오는 하느님의 영광이 되어야..
그럴 때,
믿지 않는 사람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 놓는지만,
믿는 사람은 끝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는 진정성 있는 삶의 태도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믿게 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제 자신의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이 순간입니다.
어디선가 읽었던,
“고통과 실망가운데 살고 있는 한 인간은
타인이 그에게 베푸는 관심과 사랑이 믿을 만한 것이라는 경험을 하지 않는 한,
하느님, 신에 대한 믿음을 얻기가 거의 불가능,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믿을 만한 사람인가,
신의를 지키는 사람인가, 라는 물음이 그것이다.“라는 글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거듭 얘기하지만 오늘 주님께서 혼인잔치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도
당신이 영광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영광되게 하기 위한 겁니다“
라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는 오늘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