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마냥 자상하시고 온유하시지만은 않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하느님의 집이 더 이상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장사꾼들의 집,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당시 성전에서의 예물봉헌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에게 섭섭해 하시며 분노하시는 주님일거다.
사도 바오로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각자가 바로 성령의 궁전이요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성전이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모신
살아있는 감실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
기도의 집,
하느님의 성전이 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을 의노케 한
사건과 다를 바가 없다.
나와 우리 가정, 우리 수도공동체,
우리 본당 공동체가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세속적인 욕심과 이기심이 난무하는 곳이라면
정화되어 마땅할 성전이 아니겠는가!
오늘
내 안에,
우리 가정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우리 교회 안에
과연 하느님께서 머무실 자리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지 돌아보자.
그렇지 않다면
청소를 하듯이
성전 정화작업을 하자.
오늘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하느님의 집이 더 이상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장사꾼들의 집,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당시 성전에서의 예물봉헌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에게 섭섭해 하시며 분노하시는 주님일거다.
사도 바오로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각자가 바로 성령의 궁전이요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성전이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모신
살아있는 감실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
기도의 집,
하느님의 성전이 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을 의노케 한
사건과 다를 바가 없다.
나와 우리 가정, 우리 수도공동체,
우리 본당 공동체가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세속적인 욕심과 이기심이 난무하는 곳이라면
정화되어 마땅할 성전이 아니겠는가!
오늘
내 안에,
우리 가정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우리 교회 안에
과연 하느님께서 머무실 자리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지 돌아보자.
그렇지 않다면
청소를 하듯이
성전 정화작업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