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지난 연중 2주 토요일부터 들어온 마르코복음은 오늘까지 맥락이 있습니다.
토요일엔 예수께서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친척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고,
어제는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몰려와 예수님이 악령이 들렸다고 하고,
오늘은 급기야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보러오는데 일련의 얘기를 보면
그것이 그저 보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떠도는 얘기들이 사실인지
걱정에 걱정을 하며 확인하러 온 것임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예수님께서는 온정을 가지고
걱정을 덜어드리려는 자세가 아니라 뭐하려 왔냐는 투로 대하시고
더 나아가 혈육의 관계마저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십니다.
진정 예수님께서는 가족 관계를 부정하시고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을 박대하신 것인가?
박대하신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환영하신 것은 아니며
가족 관계를 부정하신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새로운 가족 관계를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곧,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당신의 어머니이고 형제라는
것인데 그 가족관계가 육신의 부모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이고,
당신처럼 아버지의 뜻을 따르면 다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가 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어머니를 혈육으로는 부정하셨지만 당신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아버지의 딸로서 하느님의 뜻을 잘 따른 분이심은 인정하신 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처럼 하느님 뜻을 잘 따른 분이 어디 있습니까?
루카복음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뜻이 전해졌을 때
어머니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오늘 히브리서를 보면 주님께서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당신 몸을 바치셨음을 얘기하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나 어머니나 하느님 안에서 사사로운 관계는 없고,
하느님의 뜻 앞에서는 자신의 뜻이 없으셨습니다.
여기에 공평무사公平無私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지 모르지만 두 분과
관련하여 저는 이 공평무사와 대공대공大空大公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요즘 이익충돌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됩니다.
여당 국회의원이 문화재 개발구역에 개인의 땅을 산 것이 논란이 되자
야당 국회의원들도 개발구역에 가족의 땅을 가지고 있다고 맞불을 놓아
이익충돌이라는 생소한 말이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게 된 것이지요.
국회의원들이 공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공적인 이익을 위한 행위를 했는데
그 과정에 사적인 이익도 취했다면 그 행위가 공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냐,
이익충돌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며 따지는 것이지요.
아무튼 이처럼 공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사적인 것이 없어야 하고,
그래서 원불교에서는 대공대공의 심법心法, 곧 공적인 일을 크게 할 사람은
그만큼 크게 자신을 비우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공공성을 위해서도 이렇게 사적인 것을 비워야 한다면
하느님 앞에서는 더더욱 사적인 것이 없어야 하고,
하느님 뜻을 위해서는 자기의 뜻이 없어야겠지요.
그래서 하느님 안에서 사적인 관계는 청산하고
모두가 주님의 어머니와 형제인 공적인 관계로 관계를 재편하고,
모두가 하느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하고 자신의 뜻은 비우는
하느님 중심의 삶과 공동체를 꿈꾸는 오늘이고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