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깊이 파고 들어가 묵상을 하려하면 쉽지만은 않은 비유입니다.
특히 다음 말씀은 너무도 난해하여 그 뜻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우선 <저 바깥사람들>이란 어떤 사람인지가 알기 어렵습니다.
저 바깥사람들이란 과연 어떤 사람들입니까?
복음을 보면 제자들과 몇몇 사람들은 비유말씀을 듣고
그냥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수님 주변으로 모여와 그 뜻을 묻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과 예수님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비유의 뜻이 무엇일까
궁금한 사람이고 그래서 주님께 그 뜻을 알려고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저 바깥사람들>이란 예수님께 모여들지 않은 사람들인데
모여들지 않은 것은 비유를 듣고 알아듣지 못함에도
알고 싶은 것이 없고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하느님 나라는 아무도 가본 적이 없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제자들이나 제자 아닌 사람들이나 모르기는 마찬가집니다.
하늘에서 오신 주님만 아시고 그것을 알려주시려 주님께서 오셨는데
주님께서 ‘하느님 나라는 씨 뿌리는 사람’과 같다고 비유를 드셔도
그 비유에 아무런 흥미가 없고 그래서 주님을 찾아오지 않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비유에 대해 흥미가 없습니까?
제자가 아닌 <저 바깥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 마디로 얘기해서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 사람들이지요.
복음의 부자청년처럼 가진 것이 많습니다.
부모형제와 친지와 친구 다 가지고 있습니다.
재산 뿐 아니라 건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너무도 좋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니
주님께서는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당신을 따라 하느님 나라에 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 왔는데 세상을 버리라니
그야말로 혹 떼려다 오히려 혹을 붙이는 격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보다도 더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지무지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집착할 뿐 악하지는 않습니다.
영으로 치면 세상을 더럽게 집착하는 더러운 영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자기밖에는 없고 그래서 눈에 뵈는 게 없는 자들이며
오늘 주님 말씀하시듯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돌아와 용서받으려 들지도 않는 악한 자들이며 영으로 치면 악령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 안의 사람입니까?
<저 바깥사람>입니까?
이것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