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더 큰 은사를 구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더 큰 은사를 구하라고 하면 욕심이라도 부리라는 뜻입니까?
그렇지요.
욕심이 일반적으로는 나쁜 뜻이지만 오늘 여기서는 좋은 욕심입니다.
제가 자주 주장하듯 이기주의는 일반적으로 나쁜 것이지만
제가 주장하는 더 큰 이기주의는 좋은 뜻인 것과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이기주의는 자기만 아는 것으로서 나쁜 뜻이지만
제가 주장하는 더 큰 이기주의는 소탐대실하는 작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정말로 나에게 유익을 주는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좋은 뜻이지요.
이기주의利己主義란 말이 본래는 자기를 이롭게 하는 주의를 말하는 것인데
자기 이익을 위해 작은 것을 욕심 부리다가 외려 큰 것을 잃을 수도 있지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법을 안다면 그런 사람은
작은 것을 잃음으로써 내게 참된 유익을 주는 더 큰 것을 얻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더 큰 유익을 주는 것이 사랑이고,
오늘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더 큰 은사도 바로 사랑이지요.
예를 들어 코린토 전서 12장에서 얘기한 은사들,
예언의 은사,
해석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도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니 좋은 것이지만
그 어떤 은사보다도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 더 큰 은사입니다.
기실 예언의 은사나 가르치는 은사도 성령께서 주신 것이지만
사랑이 없으면 은사는 자기 배 불리게 하는 것에 불과하게 될 것이고,
그런 사람은 흔히 보듯이 은사 도둑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정도 신앙생활을 했으면 돈이나 권력보다
사랑이 내게 더 큰 유익을 준다는 것쯤은 알아야 하지만
어떤 은사보다도 사랑이 더 큰 은사임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은사를 자기를 위해 쓰면 은사가 아니라 재주에 불과하고,
사랑이 없이 재주만 있으면 재주부리다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말에 재승덕才勝德하지 말라고,
곧 재주가 덕을 이기게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신앙의 말로
바꿔 말하면 애덕이 없이 재주만 부리다 망하지 말라는 말일 겁니다.
은사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은 모두의 유익을 위해 써야
은사가 되고 내게도 유익이 되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은사를 사유화함으로
은사를 재주로 타락시키고 그래서 오늘 복음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님의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처럼 민족들의 예언자로 부르심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나만을 위해서 살거나 내 가족만을 위해 살지 않아야 함은 물론,
내 민족만을 위해 살지 말라는 것이고
모든 민족을 위해 파견된 사람들로서 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와 복음은 안중근 의사를 더욱 생각게 합니다.
사람을 죽인 것 때문에 우리 교회가 한 때 안 의사를 파문하고,
이등박문을 죽인 것을 한낱 좁은 민족주의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안 의사를 우리 민족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외친 분으로
숭앙해야 하고 새로운 범주의 성인으로 받들어야 한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아무튼 오늘 우리는 은사의 도둑놈들이 되지 말고
민족들의 예언자로 부르심 받은 사람들로 살아야 함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주님, 지혜로 도와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