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로마 카푸친 수도자들의 성당 (The Choir of the Capuchin Church in Rome :1814)
작 가 : 프랑수와 마리우스 그라넷 (Francois Marius Granet : 1775-1849)
크 기 : 캠퍼스 유채 178X148.4cm
소재지 :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 미술관
로마에서 대사관 건물과 고급 호텔이 많은 바르베르니(Brberini) 광장 근처에 고급스런 거리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집이 있는데, 바로 카푸친 프란치스코 형제들의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건물의 외양이 아니라 그 수도원에서 살다 죽은 많은 수도자들의 해골을 4000여개 보관하고 있어 해골 성당이라 불리우며 순례 코스에서도 빠지지 않는 중요한 곳이 되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해골을 모아둔 성당으로서 을씨년스러운 인상이었으나 근년엔 해골도 정리해서 죽음에 대한 묵상의 성격이 짙은 장소로 만들고 빈 공간을 카푸친 수도회 역사와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으로 정리해서 밝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작가는 프랑스 프로방스 출신으로 젊은 시절 로마에 와서 17년을 살면서 이 수도원과 깊은 연관을 가지게 되면서 카푸친 형제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담은 이 작품과 같은 성격의 그림을 15개나 그릴 만큼 이 수도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대단했다.
그에게 있어 수도원이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인간 삶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로 여겼기에, 이 수도원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작가가 로마에 머물면서 이태리 예술에 도취해 배움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이태리 수도원들은 나폴레옹의 침입에 의해 많은 수도단체가 해산되고 수도원이 보관하고 있던 많은 예술품들이 절취되어 프랑스로 옮겨가는 혼란 시기였으며 이 수도원 역시 수도자들이 추방되고 수도원이 프랑스 군대에 의해 점령되는 고통의 시련을 겪고 있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는 잠시나마 프랑스 혁명의 최종 승자로서 그에게는 두 개의 서로 상반되는 얼굴이 있었는데, 하나는 전장에서 마치 예술가처럼 창조적이고 기발한 작전으로 멋들어진 승리를 거둔 전쟁 영웅의 모습이며, 다른 하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욕구만을 추구하는 비열한 기회주의자의 모습이었는데, 나폴레옹이 교회에 대한 태도는 철저히 후자에 속한 처지였다.
교회나 수도원을 많이 폐쇄시키고 여기에 있는 문화제를 절취해서 프랑스로 가져간 도둑 수준의 지도자로서 문화 대국으로 자랑하는 프랑스는 어떤 면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염치없이 남의 물건을 훔쳐 이룩한 장물 문화 대국으로 볼 수 있으며 이것이 앞으로 세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작가는 이 혼란 시기 로마에 머물면서 카푸친 수도자들과의 깊은 우정과 그들의 삶을 통해 신앙을 심화할 수 있었고 파리로 돌아와서 이 수도원에 대한 자신의 깊은 기억을 화폭에 담았다.
수도자들이 아직 날이 충분히 밝지 않는 어둔 새벽에 미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단 부분은 보이지 않고 수도자들이 제단을 향해 서있는 가운데 성당 뒤편에 있는 창문으로부터 빛이 들어오면서 성당 전체가 서서이 밝아지고 있다.
성당 전체의 칙칙한 어두운 분위기는 나폴레옹 점령으로 어려움에 처한 수도자들의 현실적 정서를 반영되고 있다.
그러나 뒤편으로부터 들어오는 햇빛은 언젠가 닥칠 하느님의 도움을 암시하는 모습이다. 그 빛이 조그만 창을 통해 들어오기에 실내의 어둠을 몰아내기는 턱없이 부족한 처지이나 빛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과 이 빛이 실내의 어둠을 몰아낼 때가 있다는 희망이 보이고 있다.
이 빛은 수도자들이 지녀야 할 희망을 상징하고 있고 성서가 제시하는 희망의 모델이며 이 수도자들이 바치는 시편의 여러 부분에서 이런 희망이 언급되고 있다.
“구원은 오리라, 주님한테서, 하늘땅 만드신 그님 한테서, 산들을 우러러 눈을 드노라, 어디서 구원이 내게 올런고, 구원은 오리라 주님한테서 하늘땅 만드신 그 님한테서”(시편 120(121))
수도원이 몰수를 당하고 수도자들이 추방되는 현실에서 성찬례를 하고 있는 수도자들의 심정은 이 성당을 덮고 있는 어둠과 같은데, 수도자들은 불안에 휘말리지 않는 꼿꼿한 자세로 수도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성찬례를 준비하고 있다.
앞자리에 늙은 수도자가 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서있기가 힘든 처지이나 성찬례에 참석하기 위해 지팡이에 의지해서 성당에 들어와 미사 준비를 하고 있다.
수도자들의 삶에 있어 성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표현하고 있다. 수도자들은 성찬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의연한 사람들임을 알리고 있다.
표정이 드러나지 않지만 약한 그의 건강으로 삶이 위축되지 않은 의연한 모습이다. 반대편에는 한 수도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데, 이것은 수도원 규칙을 위반했거나 아니면 기도 시간에 늦게 도착해서 원장으로부터 용서를 청하고 있는 자세이다.
수도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반성함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해선 조그만 실수라도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 자기 정직성의 표현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
중앙에 있는 큰 독서대는 공동체 전체를 위한 시편 기도집을 놓는 곳이다. 인쇄술이 오늘처럼 발달되지 않았을 때 수도원에는 수도자 개인이 기도서를 가지지 않고 양피지로 된 큰 시편집을 하나 두고 수도 연륜이 그리 깊지 않아 시편을 다 외우지 못한 젊은 수도자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기도하게 만들었다.
수도 연륜이 있는 많은 수도자들은 이미 시편을 다 외우고 있기에 책 없이도 혼자 기도할 수 있었기에 아직 시편을 암기하지 못한 수도자들을 위해 이 독서대가 사용되었다.
독서대 주위에 향과 향로를 든 두 명의 어린 복사와 제의를 입은 사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성대한 주일미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인간으로서 가장 철저한 실패와 고통의 상징인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재현하는 성찬례는 가톨릭 전례의 가장 정점이며 신앙의 모든 것을 다 표현하고 있다.
벽면에는 형상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 많은 성화가 있는데, 이것 역시 전체적으로 칙칙한 모습을 보이면서 어두운 성당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폴레옹의 광기에 의해 언제 수도회가 해산되고 수도원이 문을 닫을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이들은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찬으로 오시는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면서 주님께서 이 형제들의 삶에 함께 하심을 굳게 믿기에 이들은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시편 23:4)
수도원 성당의 어두운 분위기는 이들이 처한 불안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상징이라면 뒷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면서 성 찬례를 성대하게 준비하고 있는 모습은 주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심을 굳게 믿고 있는 수도자들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야훼께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과 같으니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든든하리라. 산들이 예루살렘을 에워 감싸 주듯이 야훼께서 당신 백성을 감싸주시리라. 이제로부터 영원히.” (시편 125:1–2)
뒷면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 외에 전체가 어둠에 잠겨 있으면서 아직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서서이 어둠이 걷히고 있다는 희망이 보이고 있다.
수도자들은 어둠이 깔린 현실에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십자가 여정의 어둠이 언젠가 부활의 빛으로 이어질 것임을 믿기에 초연한 마음으로 성찬을 준비하고 있다.
프란치스칸 개혁 세력으로 카푸친 수도회가 시작될 때 기성 프란치스칸으로 부터 많은 반대를 받았으나 더 순수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고픈 카푸친 수도자들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이 시련을 이겼고 하느님은 도우셔서 1527년 교황의 인가를 받고 출범할 수 있었다.
작가가 나폴레옹의 해산 명령으로 풍전등화에 있는 이 수도회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새겨 졌기에 이 주제로 여러 작품을 남긴 것은 이들의 수도 생활을 통해 신앙의 여정을 확인할 수 있게 때문에 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신앙이 줄 수 있는 깊고 확실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 작품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었다.
단순히 수도원 일상의 정경이 아닌 신앙인으로서 시련의 시간 극복에 도움이 되는 큰 희망의 지혜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