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403 추천 수 3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오늘의 창세기는 어제 하느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가

어떤 짓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벌을 받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창세기를 읽으면서 제게 든 느낌이랄까 생각은

어제 선악과를 따 먹은 한 번의 죄로 그치지 않고,

죄가 또 다른 죄들을 낳는다는 것이고 비열하고 무책임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한 번의 죄를 바로 인정하고 뉘우쳤으면 한 번의 죄로 끝났을 텐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죄가 죄를 낳은 거지요.

이제 그것을 하나하나 보겠습니다.

 

첫 번째 것은 죄로 인해 하느님과의 단절의 더 큰 죄를 지은 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나서야 자기들이 하느님께 죄 지었음을 알고,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쳐 숨습니다.

 

우리도 자주 그러하듯 죄를 짓는 순간에는 내가 탐하는 그것밖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죄를 짓고 난 뒤에는 뭔 짓을 했는지 보게 되지요.

 

예를 들어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것을 본 순간엔 욕심 때문에

그것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을 훔친 다음에는

이미 엎질러진 물을 보게 되는데 아담과 하와도 이미 저지른

죄를 어떻게 수습을 할까 하다가 일단 도망쳐 숨고 맙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끊는 더 큰 죄를 짓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 몰래 돈을 가지고 가출하였다면 어떤 죄가 더 큽니까?

돈을 훔친 죄가 더 큽니까? 가출한 뒤 돌아가지 않는 죄가 더 큽니까?

 

제가 옛날에 오랫동안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이 있습니다.

자위행위를 하고 난 뒤 그 죄책감 때문에 성체를 영하지 않았는데

수도자가 그러고도 성체를 영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됐던 거지요.

그런데 사실 자위행위는 그리 큰 죄라고 할 수 없고 그것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숨어버리고 저의 죄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 더 큰 죄였지요.

 

아담과 하와는 죄 짓고 숨었는데 다윗은 죄 짓고 당신의 눈앞에서 죄를

지었으니 그래서 숨길 수 없으니 하느님 앞에 죄를 들고 나아가

자기의 죄를 히솝의 채로 씻어달라고 빌었지요.

 

다윗도 간음의 죄를 짓고 그것을 숨기려다 살인죄까지 지었지만

자기가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지은 것을 안 다음에는

죄가 죄를 낳은 사슬을 끊어버렸는데 그것이 회개지요.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계속 죄가 죄를 낳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끊는 죄, 사랑을 포기한 죄를 지은 다음에는

자기 죄의 책임을 지지 않고 핑계를 대는 죄,

자기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죄를 짓습니다.

 

다윗은 하느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뉘우침으로

더 이상 인간에 대한 죄를 짓지 않았는데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 대한 죄에 이어 인간에 대한 죄까지 짓는 겁니다.

 

그런데 이 핑계의 죄는 한 편으로는 죄의 책임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의 자유와 자율을 포기한 죄입니다.

 

죄를 지을 때는 자유의지로 죄를 짓고서는 죄를 짓고 난 뒤에는

내 자유의지로 죄를 진 것이 아니라고, ‘쟤 때문에 죄를 지었다.’

함으로써 스스로 자기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무책임하고 얼마나 비열합니까?

요즘 우리는 이런 것을 너무나도 잘 보고 있지요.

솔직하게랄까 자기 죄를 인정하는 사람이 없고 다 이런저런 핑계를 댑니다.

 

그런데 잘한 건 내가 한 거고 잘못한 건 쟤 때문이라고

나도 그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8Jun

    예수 성심 대축일-잃은 양과 썩은 사과 중에 나는?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오늘 주님께서는 아주 당연한 듯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당연한 듯이 말씀하...
    Date2019.06.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095
    Read More
  2. 28Jun

    예수 성심 대축일

    2019.06.28.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 http://altaban.egloos.com/2236539
    Date2019.06.28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431 file
    Read More
  3. No Image 27Jun

    연중 제 12주간 목요일 -기적과 지식-

    T.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마지막날에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까지 행했던 사람들이 외면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까지 행하면 훌륭한 신앙인이고 오히려 성인으로 추대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예수...
    Date2019.06.27 Category말씀나누기 By일어나는불꽃 Reply0 Views315
    Read More
  4. No Image 27Jun

    연중 12주 목요일-도토리 키 재기 않기.

    지금까지 한 번도 사라를 주제로 강론을 한 적이 없고, 하갈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 둘을 주제로 묵상을 하고 나눔을 하려고 합니다.   보통 시기와 질투는 붙여서 쓰고 많은 사람이 구분치 않고 쓰는데 시기와 질투는 공통점도...
    Date2019.06.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7 Views1189
    Read More
  5. 26Jun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2019.06.27.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 http://altaban.egloos.com/2236517
    Date2019.06.26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400 file
    Read More
  6. No Image 26Jun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성경 안에서 예언자들의 역할은  하느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때로는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부르는 모습이  복음서 안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거...
    Date2019.06.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387
    Read More
  7. No Image 26Jun

    연중 12주 수요일-독설보다 더 경계해야 할 교언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 저는 자연스럽게 다음 말씀이 연결됩니다. 우음수성유...
    Date2019.06.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08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36 637 638 639 640 641 642 643 644 645 ... 1354 Next ›
/ 135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