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4주일 (나해)
이제 기다림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 대림절을 보내면서 화두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구절을 갖고 기다려왔습니다.
이 말씀이 사람으로 나시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저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서 말씀으로의 변화
그리고 이 말씀에서 사람으로의 변화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소리는 공허한 울림입니다.
그러나 소리가 의미를 갖게 될 때, 그것은 말씀이 됩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리가 의미를 전달하지 않을 때, 그것은 빈 소리에 불과하다.”
의미를 갖는 소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이루어지면서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스스로 존재하지는 못합니다.
누군가가 입 밖으로 내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다윗에게 영원히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그렇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말씀을 전하신 하느님은 기다리십니다.
물론 마리아의 대답은 즉각 이루어졌지만,
영원한 순간을 사는 하느님께는 찰나 또한 영원과 다름없었을 것이고
그 시간을 그분 또한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리아에게 전해진 말씀은 그녀의 입에서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입 밖으로 내어지면서 실재가 됩니다.
이로써 마리아는 성모가 됩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아기를 밴 어머니가 출산의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아기를 낳도록 “예”라는 대답을 기다리는 하느님의 기다림입니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십니다.
이는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복음을 선포하면서 드러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은
우리의 형제, 자매, 이웃들과 피조물이라는 천사를 통해
우리에게 들립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실 하느님께 우리 어머니가 그러하셨듯이,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기다림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 대림절을 보내면서 화두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구절을 갖고 기다려왔습니다.
이 말씀이 사람으로 나시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저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서 말씀으로의 변화
그리고 이 말씀에서 사람으로의 변화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소리는 공허한 울림입니다.
그러나 소리가 의미를 갖게 될 때, 그것은 말씀이 됩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리가 의미를 전달하지 않을 때, 그것은 빈 소리에 불과하다.”
의미를 갖는 소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이루어지면서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스스로 존재하지는 못합니다.
누군가가 입 밖으로 내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다윗에게 영원히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그렇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말씀을 전하신 하느님은 기다리십니다.
물론 마리아의 대답은 즉각 이루어졌지만,
영원한 순간을 사는 하느님께는 찰나 또한 영원과 다름없었을 것이고
그 시간을 그분 또한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리아에게 전해진 말씀은 그녀의 입에서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입 밖으로 내어지면서 실재가 됩니다.
이로써 마리아는 성모가 됩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아기를 밴 어머니가 출산의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아기를 낳도록 “예”라는 대답을 기다리는 하느님의 기다림입니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십니다.
이는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복음을 선포하면서 드러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은
우리의 형제, 자매, 이웃들과 피조물이라는 천사를 통해
우리에게 들립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실 하느님께 우리 어머니가 그러하셨듯이,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바라보는 그 땅에 저의 눈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버지! 당신의 뜻..내 삶 되게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