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의 창세기는 노아의 홍수 얘깁니다.
어제는 인간이 언제나 하는 모든 짓이 악하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창조를 후회하시고 모든 것을 인간과 함께 멸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노아의 가족과 일부 생물들 외에 모든 조물을
홍수로 멸하신 다음 또 다시 당신이 하신 것, 곧
인간의 죄 때문에 다른 조물까지 멸하신 것을 후회하시는 듯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다른 조물도 멸하시었는데
오늘 말씀은 인간은 본래 악한 뜻을 품기 마련이기에
인간의 죄악 때문에 다른 조물을 멸하지는 않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거창한 주제가 생각할 거리로 주어집니다.
하나는 인간은 본래 악한 뜻을 품기 마련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과 다른 조물 관계의 연대성-개별성 문제입니다.
먼저 인간은 악한 뜻을 품기 마련이라는 것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마련>이라는 말을 주목해야겠습니다.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말이 자리를 만들겠다는 것과 같은 뜻인 것처럼
그렇게 마련했다는 것은 그렇게 만들었다는 뜻이고
그러기에 인간이 악한 뜻을 품기 마련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대로 인간이 그렇게 됐다는 뜻이요,
하느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당신의 탓이라는 것을 자인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인간의 탓이 없는 것이고 모든 것은 다 하느님 탓입니까?
아니지요. 그것은 부모가 그렇게 태어나게 하고 그렇게 키웠기 때문에
자식의 모든 잘못을 다 자기 탓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당신이 인간에게 자유와 자유의지를 줬기 때문이라고 하시는 건데
하느님은 자유의지를 죄짓는 데 쓰지 않고 사랑하는 데 쓰기를 바라셨지만
인간이 그 자유의지를 죄짓는 것에 쓴 것은 분명 인간의 탓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을 것을 뻔히 아시면서 왜 자유와 자유의지를 주셨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고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신 거잖아요?
그렇지요. 우리는 자유가 있기에 사랑도 하고 자유가 있기에 죄도 짓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기에 순종도 하고 자유의지가 있기에 거부도 합니다.
그러니 이제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사랑도 하고,
거부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순종도 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간과 피조물 관계의 연대성-개별성 문제를 보겠습니다.
어제 창세기에서 인간의 죄 때문에 다른 피조물도 멸망케 된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과 피조물의 연대성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인간에게 주시어
인간이 그 이름을 지어주게 하시고 다스리게 하셨다고 얘기합니다.
사랑으로 잘 다스려 피조물도 번성하고 인간도 풍요로우라고
선물로 주신 건데 여기에는 운명공동체라는 개념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왕이나 귀족이 죽으면 인간을 포함하여 그에게 딸린
모든 소유물이 같이 묻히는 것과 같은 개념이지요.
그런데 이제 인간이 악하기에 피조물을 잘 다스릴 능력이 없고 그래서
권한도 뺏어 인간의 죄악 때문에 피조물이 멸망케 하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에게 아이 양육권을 뺏는 것과 같은 거지요.
이제 더 이상 피조물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고 피조물로 소중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피조물을 사랑으로 잘 다스릴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은 슬픕니다.
오늘서야 다정다감한 신부님의 섬세한 마음에 가까이 귀기울입니다. 선교협동 가입서도 아직 헌 켠에 처박아 둔 채로..죄송합니다.
피조물과의 관계도 내가 여유있을 때 형제애를 느낄 수 있게 되는것 같습니다.
일상의 분주함으로 소중한 것을 잃고 살 때가 많음을 느끼는 오늘입니다.
별 말씀없이 강론이 안 올라와 조금 궁금하였으나 일이 있으시겠지~^^*
기다렸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해결 될 수 있는 일이어서요~
그런 일도 있어야 우리가 각 적재적소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감사할 수 있겠죠~~*
신부님, 늘 기쁘시길요~~하느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오늘 "인간과 다른 조물 관계의 연대성-개별성 문제"에 대한 말씀 또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