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늘 하듯 본당에 가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랬기도 했겠지만 분위기가 쫙 가라앉은 것이
명절증후군 현상이 분명했습니다.
성체를 모시러 나오는 자매님들의 몸에서 음식 냄새가 났습니다.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고 나오셨을 텐데도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며칠 계속 음식을 하여 그 냄새가 몸에 배어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명절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연세 드신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모두 모여서 명절이 기쁠 것이고
아이들도 세뱃돈 받고 맛있는 음식 먹고 친척을 만나 기쁠 것입니다.
나머지에게 명절은
집안청소하고
음식준비하고
손님 접대 하는 것 때문에
피곤하고 번거로운 행사치례일 뿐이고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는 명절기분을 내기는커녕
돈이 없어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곱씹게 되는
속 쓰린 시간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저는 명절에서 한 발짝 빗겨 서있는 사람으로서
요즘 명절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어렸을 때의 명절과 비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뭘 모르는 어렸을 때였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옛날 명절은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들고
지금보다 더 오랜 기간 명절을 치렀는데도
정말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지금 명절은 옛날보다 더 잘 사는데도 초라하고
더 짧은 데도 더 힘겨워만 할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는 너무 배부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음식을 다른 때는 못 먹고 명절 때만 먹을 수 있다면
명절이 매우 기다려지고 기쁘고 풍요롭겠지요.
얼마 전
남미 원시부족의 축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1년에 한 차례 축제일에만 돼지를 잡아먹는데
이 돼지 바비큐를 마을 사람 모두 모여 같이 먹으면서 축제를 즐깁니다.
그러고 보니 제 어렸을 때 명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명절이 되면 다른 때는 먹을 수 없는 소를 잡아 같이 나눠먹는데
며칠 전서부터 누구네 소인지, 얼마나 큰 소인지
집집마다 또는 모이기만 하면 그 얘기하면서 마음이 들뜹니다.
그 소고기를 1년에 한 번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명절은 충분히 기쁘고
그 기쁨 때문에 모든 힘든 것을 기꺼이 감수하게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원하기만 하면 소고기를 아무 때나 먹을 수 있고
너무 많이 먹어서 걱정이던지 광우병 때문에 걱정하고 있습니다.
늘 배부르니 축제가 기다려지지 않고
기다리지 않으니 기쁨도 풍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명절을 기쁘게 하는 것이 명절 음식만이 아닙니다.
같이 명절을 준비하고 같이 먹고 같이 명절을 즐기는 것입니다.
준비도 누림도 같이 하는 것, 여기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大同이라고 합니다.
작년 우리는 달걀을 같이 만듦으로써
부활 축제가 더 기뻤던 경험이 있고
그제는 눈을 같이 치움으로써 눈치는 일이 즐거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대동을 하면 하는 일이 사랑과 보람, 심지어 즐거움이 되는데
혼자 하면 괴롭고 힘들고 지치게 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명절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만남입니다.
너무도 보고 싶지만 평소에는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을
명절에는 만날 수 있기에 명절이 기쁩니다.
명절이 되어도
아무 만날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날 사람, 찾아와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은
명절이 기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픕니다.
그래서 어제는
제가 아는 탈북자들에게 전화로라도 새해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새 해의 복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이들이 받아야 할 새 해의 복은 북에 남은 가족을 데려오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이 명절은 사랑하는 가족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날이고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새기는 날이며
다른 한 편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만족의 대상이 되어주기를 바람으로써
불만하고 미워했던 지난 한 해를 반성하며
새롭게 사랑하기로 다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랬기도 했겠지만 분위기가 쫙 가라앉은 것이
명절증후군 현상이 분명했습니다.
성체를 모시러 나오는 자매님들의 몸에서 음식 냄새가 났습니다.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고 나오셨을 텐데도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며칠 계속 음식을 하여 그 냄새가 몸에 배어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명절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연세 드신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모두 모여서 명절이 기쁠 것이고
아이들도 세뱃돈 받고 맛있는 음식 먹고 친척을 만나 기쁠 것입니다.
나머지에게 명절은
집안청소하고
음식준비하고
손님 접대 하는 것 때문에
피곤하고 번거로운 행사치례일 뿐이고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는 명절기분을 내기는커녕
돈이 없어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곱씹게 되는
속 쓰린 시간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저는 명절에서 한 발짝 빗겨 서있는 사람으로서
요즘 명절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어렸을 때의 명절과 비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뭘 모르는 어렸을 때였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옛날 명절은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들고
지금보다 더 오랜 기간 명절을 치렀는데도
정말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지금 명절은 옛날보다 더 잘 사는데도 초라하고
더 짧은 데도 더 힘겨워만 할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는 너무 배부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음식을 다른 때는 못 먹고 명절 때만 먹을 수 있다면
명절이 매우 기다려지고 기쁘고 풍요롭겠지요.
얼마 전
남미 원시부족의 축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1년에 한 차례 축제일에만 돼지를 잡아먹는데
이 돼지 바비큐를 마을 사람 모두 모여 같이 먹으면서 축제를 즐깁니다.
그러고 보니 제 어렸을 때 명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명절이 되면 다른 때는 먹을 수 없는 소를 잡아 같이 나눠먹는데
며칠 전서부터 누구네 소인지, 얼마나 큰 소인지
집집마다 또는 모이기만 하면 그 얘기하면서 마음이 들뜹니다.
그 소고기를 1년에 한 번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명절은 충분히 기쁘고
그 기쁨 때문에 모든 힘든 것을 기꺼이 감수하게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원하기만 하면 소고기를 아무 때나 먹을 수 있고
너무 많이 먹어서 걱정이던지 광우병 때문에 걱정하고 있습니다.
늘 배부르니 축제가 기다려지지 않고
기다리지 않으니 기쁨도 풍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명절을 기쁘게 하는 것이 명절 음식만이 아닙니다.
같이 명절을 준비하고 같이 먹고 같이 명절을 즐기는 것입니다.
준비도 누림도 같이 하는 것, 여기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大同이라고 합니다.
작년 우리는 달걀을 같이 만듦으로써
부활 축제가 더 기뻤던 경험이 있고
그제는 눈을 같이 치움으로써 눈치는 일이 즐거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대동을 하면 하는 일이 사랑과 보람, 심지어 즐거움이 되는데
혼자 하면 괴롭고 힘들고 지치게 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명절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만남입니다.
너무도 보고 싶지만 평소에는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을
명절에는 만날 수 있기에 명절이 기쁩니다.
명절이 되어도
아무 만날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날 사람, 찾아와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은
명절이 기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픕니다.
그래서 어제는
제가 아는 탈북자들에게 전화로라도 새해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새 해의 복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이들이 받아야 할 새 해의 복은 북에 남은 가족을 데려오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이 명절은 사랑하는 가족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날이고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새기는 날이며
다른 한 편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만족의 대상이 되어주기를 바람으로써
불만하고 미워했던 지난 한 해를 반성하며
새롭게 사랑하기로 다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어제 시댁에 가서 시댁 식구들과 기쁜 만남을 갖고 이제 돌아왔습니다.
올해에는 지난 해 보다 더욱 사랑하는 한해가 되는 은총 간구해 봅니다.
올 해는 지난 해를 거울 삼아 더욱 사랑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