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
오늘은 주님 말씀 중에서 양식에 대해 묵상해 봤고
양식하면 일용할 양식, 마음의 양식, 천상 양식이 있는데
이중에서 내가 얻으려 힘쓰는 양식은 뭔지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내가 얻으려 힘쓰는 양식에 대해 묵상을 하다 보니
나는 양식보다는 음식에 대해 더 신경 쓴다는
씁쓰레한 반성이 먼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음식이라는 말과 양식이라는 말이 별 차이 없고 그게 그건 것 같은데
그래도 뭔가 어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 그 차이가 뭘까 생각해보니
음식이 좀 더 욕구적인 표현인데 비해 양식은 힘이나 생명이 되는 것,
나의 힘이나 생명을 지탱케 하는 것의 뜻이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마음의 양식은 어색치 않은데 마음의 음식은 어색하고,
일용할 양식은 어색치 않은데 일용할 음식은 약간 어색합니다.
그리고 요즘 저는 양식에 대해선 별 신경을 쓰지 않는데 비해
음식에 대해서 신경을 더 많이 쓴다는 성찰도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나 다른 사람이 어떤 양식을 얻으려 애쓰는지에 대해선
별 신경을 쓰지 않는데 어떤 음식을 먹는지,
음식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선 제가 신경을 많이 쓴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렸을 때의 경험, 그러니까 어렸을 때 너무 배고프며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이 있고 배부르면 됐지 맛을 너무 따지는 것이 싫고,
맛 집 찾아다니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사진 찍어 올리거나,
반대로 맛없다거나 조금 상했다며 음식을 버리거나 하면
배들이 불러서 그런다고 어떤 때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양식이 우리의 힘과 생명을 지탱케 하는 것이라면
음식은 우리의 욕구와 더 관련이 있기에 욕구불만 때문에 과식하거나
욕구만족을 위해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곤 하는데
우리는 음식보다 양식에 신경을 더 써야 합니다.
그리고 양식에 대해 신경을 쓰더라도 오늘 주님 말씀처럼
어떤 양식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썩어 없어질 양식 또는 먹고도 죽을 일용할 양식보다는
마음의 양식을 찾고 마음의 양식보다는 생명의 양식,
그것도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는 양식을 찾아야 하며,
그래서 독서로 치면 마음의 양식이 되는 일반 독서도 좋지만
생명의 양식이 되는 하느님 말씀을 읽는 것, 곧 성독聖讀을 해야 하고
먹는 것으로 치면 육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겠지만
영혼 건강에 좋고 영원한 생명도 주는 성체를 먹는 것,
곧 성식聖食을 해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