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오늘 복음에서 무슨 표징을 일으키어 믿게 하겠냐는 사람들이나
오늘 독서에서 스테파노를 죽인 사람들은 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네가 말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아!’라고 하면
상대가 전혀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믿을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러니 이런 사람은 반대의 경우, 곧 상대가 믿음을 주는 사람에게는
‘네가 말하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누가 말해도 믿지 않는 사람,
아무의 말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메주는 콩으로 쑤는 것이잖아요?
그런데도 누가 말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믿지 못할 이유가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고, 믿을 의지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무슨 수를 쓰고 무슨 표징을 보여도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이 믿지 않으려고 할까요?
잘 믿어주는 사람이 좋지 않습니까?
사람은 못 믿더라도 하느님은 믿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왜 믿지 않을까요?
그것은 믿을 수 없고 믿지 않는 사람은
믿어서 손해 본 경험이 있는, 곧 안 좋은 경험이 있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이란 못 믿을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박혀있으며,
그래서 여기서 더 나아가 하느님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불신의 인이 박혀 이 불신의 인이 누구든 불신하게 하고,
하느님도 불신하게 하는 것이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불신의 인이라! 그것이 뭘까요?
우리는 인이 박혔다고 흔히 얘기하는데 여기서 <인>이란 뭘까요?
사전에서는 여러 번 되풀이하여 몸에 밴 버릇이나 중독 따위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 한자어의 인因의 뜻도 여기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곧 원인과 결과에서 결과를 내는 원인原因이고
과일로 치면 열매를 내는 씨앗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씨앗에서는 그 씨앗의 열매가 열리는데
불신이라는 결과/열매는 불신의 인/씨앗 때문이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우리가 불신하게 되는 것이 불신의 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불신하게 만드는 내적인 이유가 있는데 제 생각에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이란 자기 외에는 모든 것을 부정하게 하는 자기중심성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자기가 정당하기 위해 다른 사람은 부당해야 하고,
자기 말이 맞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말은 틀려야 하며,
잘난 자기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은 못나야 하고,
자기가 선이기 위해 남은 다 악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해도 부정을 하고 믿지 않으며
무시하고, 남에게 자신을 개방치 않습니다.
부정,
불신,
무시,
단절, 이런 것들이 교만의 현상인 겁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하늘의 표징이 되지 못하고,
주님도 믿을 수 있는 분이 못되며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스테파노도 용납될 수가 없습니다.
스테파노에게는 하늘이 열렸는데 이들에게는 하늘이 닫혀있고,
그래서 오늘 스테파노가 열려있는 하늘을 보라고 하지만 보지 않고
오히려 귀를 막으며 마침내는 스테파노늘 죽이는데, 감당할 수 없는
주님을 유대 지도자들이 죽였듯 감당할 수 없으니 제거하는 겁니다.
그러니 표징이 없어도 믿고 싶고, 믿으려는 우리는
많이 부족해도 꽤 괜찮은 사람들이고 복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