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서 한 주간 계속되던 요한복음 6장이 끝나는데
오늘은 생명을 주는 말씀에 대한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이 주님 말씀을 거북해하며 떠나고 예수님께서
너희도 떠나겠냐고 하시자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주님께 있다고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믿음을 고백한 베드로가 오늘의 독서 사도행전에서는
중풍병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행하는데 그 모습이
주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하고 죽은 소녀를 살리신 것의 판박이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똑같은 기적을 베드로가 일으킬 수 있을까 생각게 되는데
그래서일까 베드로는 애네아스를 치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그러니까 같은 주님께서 자기 안에서 치유하시는 거라고 말하는 거지요.
그런데 베드로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입으로 고백하였지만 그것은 그저 머리로 알고 입으로 고백한 것이지
나중의 그의 행위를 보면 주님을 따르지 않고 버리고 도망쳤지요.
그런 그가 오늘 사도행전에서는 확신을 가지고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에네아스 병을 치유하고 죽은 다비타를 다시 살리는데
이것이 머리의 믿음과 행동의 믿음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배신했던 베드로의 믿음이 행동하는 확신으로 바뀐 것을 보면서
저는 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오늘 베드로처럼 입으로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정녕 당신께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믿음은 여기까지이고 그래서 베드로처럼
입으로 믿음을 고백하지만 행동은 주님을 따르지 않고 제 좋을 대로입니다.
그래서 이런 저를 보면서 머리의 믿음과 행동의 믿음의 차이를 반성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보면서 지금의 이러한 저도
언젠가는 베드로처럼 되리라 희망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