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253 추천 수 2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올 부활절 이후 저는 자주 예수가 죽어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다는 것을,

뒤집어 얘기하면 예수가 죽지 않으면 그리스는 부활하실 수 없다는 것을

자주 묵상하게 되었고 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나를 봤으면 나를 보내신 분을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살아 함께 계실 때에는

예수님을 보고서 그리스도를 보는 것에 실패했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을 보는 것에도 실패했지요.

 

그리고 예수가 죽고 인간 예수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이 없어지고 난 뒤에야

예수에게 고착되었던 눈을 돌려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되었던 겁니다.

예수가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가리는 우상이었던 셈입니다.

 

개신교가 예수님의 모습이 있는 십자고상도 우상이라고 하며

예수님이 없는 십자가만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런데 우리 가톨릭에서는 그렇게 생각지 않지요.

십자고상이 수난과 부활의 그리스도를 관상케 한다는,

보이는 것이 다 그리고 꼭 우상은 아니라는 입장이지요.

 

밖의 사물이 문제가 아니라 안의 눈이 문제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예쁜 여자가 하느님 관상을 방해하는 우상이 아니라

예쁜 여자에 홀려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욕망의 눈이 문제지요.

 

제가 자주 하는 예가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우리가

아름다우신 하느님을 보는데 실패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우상이 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사람의 경우나 돈의 경우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데

그것은 악하거나 예쁜 사람의 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욕망과 욕심으로 보는 눈이 문제이고

내 안에 욕망과 욕심이 있을 때 그것들이 하느님을 가리는 우상이 되지요.

 

그러나 세상 욕망이 내 안에서 비어지고 교만도 부서져 우리가

믿음과 성령의 눈을 가지게 되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볼 수 있고,

형제 안에서 얼마든지 하느님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헐벗은 사람이 곧 당신이라는 말씀처럼 형제가 곧 주님임을 볼 수 있지요.

 

지금 저는 영보 연수회를 위해 산청 성심원에 와있는데

어제는 아침 일찍 경호강을 따라서 뛰었습니다.

 

흐르는 물을 보면서 물이 흐르듯 모든 것은 흘러간다는 것을 묵상하며,

그러니 사람이든 건강이든 흘러가는 것을 붙잡으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묵상을 하며 처음엔 뛰었는데 계속 뛰면서는 이 물이 어디서 나와

여기까지 흘러 왔는지 그러니까 수원지에 대해 묵상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정 반대인 걸로만 사람들이 알고 있고

우리 교회는 진화론을 부정하는 거로만 알고 있는데

우리 교회가 진화론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 교회가 반대하는 것은 무신론적인 진화론이고,

우리 교회는 창조론적인 진화론을 얘기하고 있지요.

 

무신론적인 진화론은 있는 것의 근원이나 근원의 근원을 따지지 않고

이미 있는 것에서부터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그것만을 따지지만

창조적 진화론은 있는 모든 것은 그 근원이 창조주 하느님이시고,

창조된 모든 것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까지 온 거라고 얘기하지요.

 

그러므로 있는 모든 것은 부모를 통해 생겨났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이 세상에 보내시어 있는 것이며,

프란치스코가 유언에서 얘기하듯 형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형제이고,

복음에서 주님 말씀하시듯 예수님도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지요.

 

있는 모든 것은 저절로 그리고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보내주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임을 관상하는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17May

    부활 제4주간 금요일

    2019.05.17. 부활 제4주간 금요일 - http://altaban.egloos.com/2235687
    Date2019.05.17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422 file
    Read More
  2. No Image 17May

    부활 4주 금요일-내가 있을 곳, 가야 할 곳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옛날에 아이 둘을 둔 엄마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엄마였습니...
    Date2019.05.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240
    Read More
  3. No Image 16May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주 파견된 존재로 표현됩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그 아버지의 뜻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며, 세상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말씀이 육...
    Date2019.05.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406
    Read More
  4. No Image 16May

    부활 4주 목요일-내가 없으면 나는 네가 된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우리는 복음을 읽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자기 식대로 해석/이해하거나 자기 식대로 해석치는 않지만 그렇게 실천할 수 없는 자기를 합리화 하며, 심지어는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
    Date2019.05.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225
    Read More
  5. 15May

    부활 제4주간 목요일

    2019.05.16. 부활 제4주간 목요일 - http://altaban.egloos.com/2235664
    Date2019.05.15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400 file
    Read More
  6. No Image 15May

    부활 4주 목요일-보는 눈과 못보는 눈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올 부활절 이후 저는 자주 예수가 죽어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다는 것을, 뒤집어 얘기하면 예수가 죽지 않으면 그...
    Date2019.05.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253
    Read More
  7. 14May

    부활 제4주간 수요일

    2019.05.15. 부활 제4주간 수요일 - http://altaban.egloos.com/2235649
    Date2019.05.14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525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71 672 673 674 675 676 677 678 679 680 ... 1373 Next ›
/ 137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