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같은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에게 존댓말 하는 분에게 막말할 수 없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잘해 줄려는 분에게는 무심할 수 없고요.
대부분 나는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인복이 많다고 하는 분을 보게 됩니다.
그분은 자기는 별로 해준 것이 없는데
운이 좋아 주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뜻으로 겸손하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 주위에 많은 것이
사실은 그분이 모두에게 잘 해주기 때문이지요.
그분의 삶을 잘 들여다보면
별로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옆에 있는 제가 볼 때
뭔가 있기만 하면 그저 줄려고 하고
그것도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저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것을 줬는데도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해야 계속 줄 수 있지요.
많이 줬다고 생각하면 더 주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많이 주고 받지는 못했다고 생각하면
더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섭섭한 마음까지 들 테니까요.
생각해보면 이치가 그렇습니다.
조금 주었는데도 많이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됫박, 그 사람의 통은 그 정도로 작은 것입니다.
반대로 많이 주었는데도 적게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됫박, 그 사람의 통은 그 정도로 큰 것입니다.
한 되가 큰 사람이 있고
한 되는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한 되가 큰 사람은 통이 작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은 통이 그 정도니
받는 것도 최고로 많이 받아야 한 되밖에 못 받겠지요!
한 되가 작은 사람은 통이 큰 사람이니
받는 것도 그만큼 많이 받겠지요.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이 관계가 혹간 깨질 수도 있습니다.
많이 주었는데도 그만큼 되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짠돌이기에 그럴 수도 있고
상대가 그럴 능력이 못되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북한을 위해서 일을 하다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퍼주기만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고
좋은 뜻 가지고 하다가도 너무하다 싶어 그만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주었다고도 생각지 않고 되받을 기대도 하지 않고
계속 돕는 통 큰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관계에서는 되질 해준 대로 받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경우는 그의 되가 나보다 작기에 그대로 되받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되가 우리의 되보다 훨씬 크시기에
큰 되로 되돌려 주십니다.
우리의 되가 작아서 더 이상 못 받지
하느님께서는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는 말씀대로 넘치게 되돌려주십니다.
자비도,
용서도.
그러니 우리도
자비의 됫박,
용서의 됫박을 크게 키워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같은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에게 존댓말 하는 분에게 막말할 수 없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잘해 줄려는 분에게는 무심할 수 없고요.
대부분 나는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인복이 많다고 하는 분을 보게 됩니다.
그분은 자기는 별로 해준 것이 없는데
운이 좋아 주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뜻으로 겸손하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 주위에 많은 것이
사실은 그분이 모두에게 잘 해주기 때문이지요.
그분의 삶을 잘 들여다보면
별로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옆에 있는 제가 볼 때
뭔가 있기만 하면 그저 줄려고 하고
그것도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저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것을 줬는데도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해야 계속 줄 수 있지요.
많이 줬다고 생각하면 더 주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많이 주고 받지는 못했다고 생각하면
더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섭섭한 마음까지 들 테니까요.
생각해보면 이치가 그렇습니다.
조금 주었는데도 많이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됫박, 그 사람의 통은 그 정도로 작은 것입니다.
반대로 많이 주었는데도 적게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됫박, 그 사람의 통은 그 정도로 큰 것입니다.
한 되가 큰 사람이 있고
한 되는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한 되가 큰 사람은 통이 작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은 통이 그 정도니
받는 것도 최고로 많이 받아야 한 되밖에 못 받겠지요!
한 되가 작은 사람은 통이 큰 사람이니
받는 것도 그만큼 많이 받겠지요.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이 관계가 혹간 깨질 수도 있습니다.
많이 주었는데도 그만큼 되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짠돌이기에 그럴 수도 있고
상대가 그럴 능력이 못되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북한을 위해서 일을 하다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퍼주기만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고
좋은 뜻 가지고 하다가도 너무하다 싶어 그만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주었다고도 생각지 않고 되받을 기대도 하지 않고
계속 돕는 통 큰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관계에서는 되질 해준 대로 받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경우는 그의 되가 나보다 작기에 그대로 되받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되가 우리의 되보다 훨씬 크시기에
큰 되로 되돌려 주십니다.
우리의 되가 작아서 더 이상 못 받지
하느님께서는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는 말씀대로 넘치게 되돌려주십니다.
자비도,
용서도.
그러니 우리도
자비의 됫박,
용서의 됫박을 크게 키워야 하겠습니다.
진짜 보시는 준 사람도 없고 받은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행복합니다.
숨은 일도 ,숨겨논 일도 보시는 하느님이 계시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