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19.07.06 16:42

연중 제14주일

조회 수 492 추천 수 1 댓글 1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다른 말로 종말이 다가왔음을,

 심판의 때가 다가왔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복음이

 마냥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지만은 않습니다.

 종말, 심판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지고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쁨으로 다가오지만,

 그 심판을 제대로 통과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그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즉 우리 안에는 두 가지 모습이 다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갈라질까요?


 오늘 복음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무리가 나타납니다.

 평화를 전하는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로 갈라집니다.

 그들에 대한 제자들의 행동은,

 중간 부분을 생략하고 마지막 부분만 본다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것으로

 똑같습니다.

 즉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누구에게든 하느님의 나라는 가까이 왔습니다.

 즉 종말과 심판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입니다.

 그들은 병의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1독서에서 이사야가 이야기하는

 그 행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무서운 심판의 순간입니다.

 끔찍하게 멸망하게 된 소돔보다

 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제자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파견하신 예수님,

 더 나아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거부하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데,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과 영원토록 함께 하는 것이다보니,

 그만큼 고통스러운 상태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여행 보따리나 신발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하느님은 온데 간데 없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지만,

 내 안에 있는 허한 마음을 그것으로 채우려할 때,

 그것만이 전부인양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러한 것에 마음을 쓰고 있는지는,

 그러한 것들을 빼앗길 때

 화가 나거나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끼는지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

 물질에 연연해하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6Aug

    예수의 거룩한 변모 축일-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오늘 축일을 지내면서 관건은 왜 주님께서 변모하셨을까, 그것도 왜 세 제자 앞에서만 변모하셨으며 변모의 목적이 무엇이고 왜 우리는 ...
    Date2019.08.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4 Views1339
    Read More
  2. 05Aug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2019.08.06.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 http://altaban.egloos.com/2237213
    Date2019.08.05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411 file
    Read More
  3. 05Aug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2019.08.05.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 http://altaban.egloos.com/2237203
    Date2019.08.05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1 Views428 file
    Read More
  4. No Image 05Aug

    연중 18주 토요일-도전받는 오늘 우리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오늘 주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외딴 곳으로...
    Date2019.08.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915
    Read More
  5. No Image 04Aug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오늘 독서와 복음은 비슷한 점이 몇 개 있습니다. 우선 장소를 보면, 독서는 광야이며, 복음은 외딴 곳입니다. 외딴 곳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사막, 광야 등의 뜻도 담고 있기에, 두 곳의 장소는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곳에서 모두 배고파하는 백...
    Date2019.08.0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486
    Read More
  6. No Image 04Aug

    2019년 8월 4일 연중 제 18주일-터키 에페소 기도의 집

    2019년 8월 4일 연중 제 18주일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갈망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인간의 모든 갈망의 근원에는 인간의 근본적 결핍과 존재의 충만과 확장 속에서 삶을 영위하려는 기본적 욕구가 있습니다.  성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갈망을 ...
    Date2019.08.04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346
    Read More
  7. No Image 04Aug

    연중 제 18주일-다른 것은 다 움켜쥔 모래와 같은 것들, 사랑만이

    이 세상 모든 부귀와 영화는 움켜쥔 모래와 같다는 것이 오늘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을 오늘 독서는 “태양 아래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말로 일갈을 하고, 오늘 복음도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
    Date2019.08.0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4 Views127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587 588 589 590 591 592 593 594 595 596 ... 1318 Next ›
/ 1318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