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수녀원에 가서 성탄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수녀님들 말고도 몇 가족이 있어서 미사를 드리고
같이 축하 다과를 하였는데 그 중 한 아이가 저에게
“거룩하시다가 무슨 뜻이에요?”하고 느닷없이 묻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하느라 끙끙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에 정리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거룩한 것은 수평적 차원과 수직적 차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수평적 차원에서 거룩한 것을 얘기하면
거룩한 것은 ‘남다른’ 것입니다.
여느 것들과는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남다름이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그저 튀기 위함이 아닙니다.
만일 그러한 남다름이라면 그 또한 속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것은 신적인 면에서 남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함의 수직적 차원입니다.
사실은 하느님만이 거룩하신데,
그래서 거룩함은 모두 하느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가는 하느님께 노래하고 하느님을 노래합니다.
성당은 하느님만을 위해 쓰이는 공간입니다.
성작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만 쓰이는 잔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당연히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고
그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사랑의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마음일지라도 여느 사랑과 다릅니다.
그것은 근심하는 사랑,
그것은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사랑,
그것은 영악하지 않고 알고도 져주는 바보 사랑,
그것은 자기의 상처로 다른 이의 상처를 낫게 하는 사랑,
그것은 한 마디로 십자가 위에서 창검에 찔린 심장의 사랑입니다.
머리의 사랑이 아니고,
감성의 사랑이 아니고,
심장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서로의 사랑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지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하늘을 향합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같이 바라보고
이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같이 흠모하고
이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향해 같이 나아갑니다.
서로를 바라보고 연모하던 풋사랑의 연인들이 부부가 되어
온갖 풍상을 같이 맞고
서로의 짐을 나눠 지고
마침내 같이 하느님을 바라보고
같이 하느님께로 향해 가는 것,
이것이 성심의 사랑이 아닐까,
이 새벽 묵상해봅니다.
수녀님들 말고도 몇 가족이 있어서 미사를 드리고
같이 축하 다과를 하였는데 그 중 한 아이가 저에게
“거룩하시다가 무슨 뜻이에요?”하고 느닷없이 묻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하느라 끙끙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에 정리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거룩한 것은 수평적 차원과 수직적 차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수평적 차원에서 거룩한 것을 얘기하면
거룩한 것은 ‘남다른’ 것입니다.
여느 것들과는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남다름이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그저 튀기 위함이 아닙니다.
만일 그러한 남다름이라면 그 또한 속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것은 신적인 면에서 남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함의 수직적 차원입니다.
사실은 하느님만이 거룩하신데,
그래서 거룩함은 모두 하느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가는 하느님께 노래하고 하느님을 노래합니다.
성당은 하느님만을 위해 쓰이는 공간입니다.
성작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만 쓰이는 잔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당연히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고
그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사랑의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마음일지라도 여느 사랑과 다릅니다.
그것은 근심하는 사랑,
그것은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사랑,
그것은 영악하지 않고 알고도 져주는 바보 사랑,
그것은 자기의 상처로 다른 이의 상처를 낫게 하는 사랑,
그것은 한 마디로 십자가 위에서 창검에 찔린 심장의 사랑입니다.
머리의 사랑이 아니고,
감성의 사랑이 아니고,
심장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서로의 사랑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지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하늘을 향합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같이 바라보고
이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같이 흠모하고
이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향해 같이 나아갑니다.
서로를 바라보고 연모하던 풋사랑의 연인들이 부부가 되어
온갖 풍상을 같이 맞고
서로의 짐을 나눠 지고
마침내 같이 하느님을 바라보고
같이 하느님께로 향해 가는 것,
이것이 성심의 사랑이 아닐까,
이 새벽 묵상해봅니다.
온갖 풍상을 같이 맞고
서로의 짐을 나눠 지고
마침내 같이 하느님을 바라보고
같이 하느님께로 향해 가는 것,
이것이 성심의 사랑이 아닐까.."
신부님! 우리 부부 살아가는 모습 같은걸요..ㅎㅎ
결혼 24년 째..이젠 좋은 친구로 살아요.
함께 기도하고.. 끝까지 믿어 주고..
아무 것도 간섭하지도 구속하지도 않고..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도록 도와주고..
주변에서는 '닭살부부'라고 놀리지만
저는 남편과 함께 하는 삶이 더없이 편안한걸요.
그것이 성심의 사랑이라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결코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말도
아니라는 것을 그러한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알아 들을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랑이 체험돨 수 있는 만남은 참으로 소중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싶습니다.
하지만 누가 먼저 자신의 상처로 다른이의 상처를 낫게 하는
모델링이 될것인가 하는 것이겠지요.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 성심의 사랑을 믿는 사람이 먼저 할 것입니다.
헌데, 그 사람이 다름아닌 내 자신이어야 한다는 깨달음과 현실사이에서
갑짜기 마음이 복잡해 진다는 느낌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감성의 사랑도 아니고,
심장의 사랑이란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언제쯤이면
알고도 져주고,
나의 상처로 다른 이의 상처를 낫게 해주는
심장의 사랑을 하게 될까요?
온갖 풍상을 같이 맞고
서로의 짐을 나눠 지고
마침내 같이 하느님을 바라보고
같이 하느님께로 향해 가는 것,
이것이 성심의 사랑이 아닐까,
...................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흐른다..
성체를 모시고 돌아온 자리가 거룩한 자리인데...
모셨으니 예수님을 담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작은 십자가도 지지 않으려는
저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