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부산 봉래동 성당에 있을 때입니다.
태풍이 부산을 강타할 때였습니다.
신자들께서 모두 집에 돌아가신 밤,
성당에는 저 혼자만 남았습니다.
혹시 문이 덜 닫힌 곳이 없나 성당을 구석구석 다 살피며 돌아다니는데
태풍의 대단한 위력에 유리창들이 다 떨어져나갈 것처럼 덜컹거림에
순간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당에 주님이 계시는데도 무서운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는데 무얼 무서워하느냐고 한 편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 편 무서움과 두려움을 얼마간 느끼는 저를 보며
저의 믿음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가다 돌풍을 만나고
거대한 파도에 배가 가라앉을 위험에 처합니다.
그 배에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만 주무시고 계십니다.
위험에 당황한 제자들이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 살려달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바람을 잠재우시고
제자들에게는 왜 무서워하느냐, 왜 믿음이 없냐고 꾸짖으십니다.
잘 아시다시피 오늘 복음의 상황은 우리 인생 여정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도 호수 이 쪽에서부터 호수 저 쪽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가다보면 돌풍과 큰 파도를 꼭 만나게 되고
일생에 한 두번 인생 좌초의 위험에도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무섭고 떨리고 위급한 때에
주님은 내 배에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계시더라도 나의 위급함과 좌초를 주무시느라 못 보시거나
보시고도 못 본 체 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로 이때 우리 믿음은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납니다.
그러나 시험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성장하도록 단련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돌풍이 무섭지 않을 정도로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까짓것”입니다.
이 까짓것에 내 인생이 좌초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믿음에서 나오는 깡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자신(自信)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믿음입니다.
오늘의 욥기가 말하듯
우리를 죽음에 빠뜨릴 수 있는 파도와 그 대단한 바다도
하느님 손아귀에 있는 것이고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이 내 배에 함께 계시며 인생 여정을 같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죽으면 하느님도 같이 돌아가십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과 나는 한 배를 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 배는 절대 좌초하지 않고,
나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큰 인생의 돌풍도 ‘이 까짓것!’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과 같은 하느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골리앗은 분명 대단히 큰 장수입니다.
이스라엘의 그 많은 장수들이 이 큰 장수 앞에서 지레 겁을 먹고,
그러니 당연히 싸우기도 전에 집니다.
그러나 어린이에 불과하고 무기도 변변치 않은 다윗은
골리앗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가 아무리 커도 주님보다는 작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큰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큰 일이야!”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일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큰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일도 작은 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내겐 이 까짓것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바오로 사도의 믿음과 자신감이 우리에게도 있어야겠습니다.
태풍이 부산을 강타할 때였습니다.
신자들께서 모두 집에 돌아가신 밤,
성당에는 저 혼자만 남았습니다.
혹시 문이 덜 닫힌 곳이 없나 성당을 구석구석 다 살피며 돌아다니는데
태풍의 대단한 위력에 유리창들이 다 떨어져나갈 것처럼 덜컹거림에
순간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당에 주님이 계시는데도 무서운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는데 무얼 무서워하느냐고 한 편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 편 무서움과 두려움을 얼마간 느끼는 저를 보며
저의 믿음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가다 돌풍을 만나고
거대한 파도에 배가 가라앉을 위험에 처합니다.
그 배에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만 주무시고 계십니다.
위험에 당황한 제자들이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 살려달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바람을 잠재우시고
제자들에게는 왜 무서워하느냐, 왜 믿음이 없냐고 꾸짖으십니다.
잘 아시다시피 오늘 복음의 상황은 우리 인생 여정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도 호수 이 쪽에서부터 호수 저 쪽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가다보면 돌풍과 큰 파도를 꼭 만나게 되고
일생에 한 두번 인생 좌초의 위험에도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무섭고 떨리고 위급한 때에
주님은 내 배에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계시더라도 나의 위급함과 좌초를 주무시느라 못 보시거나
보시고도 못 본 체 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로 이때 우리 믿음은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납니다.
그러나 시험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성장하도록 단련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돌풍이 무섭지 않을 정도로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까짓것”입니다.
이 까짓것에 내 인생이 좌초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믿음에서 나오는 깡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자신(自信)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믿음입니다.
오늘의 욥기가 말하듯
우리를 죽음에 빠뜨릴 수 있는 파도와 그 대단한 바다도
하느님 손아귀에 있는 것이고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이 내 배에 함께 계시며 인생 여정을 같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죽으면 하느님도 같이 돌아가십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과 나는 한 배를 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 배는 절대 좌초하지 않고,
나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큰 인생의 돌풍도 ‘이 까짓것!’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과 같은 하느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골리앗은 분명 대단히 큰 장수입니다.
이스라엘의 그 많은 장수들이 이 큰 장수 앞에서 지레 겁을 먹고,
그러니 당연히 싸우기도 전에 집니다.
그러나 어린이에 불과하고 무기도 변변치 않은 다윗은
골리앗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가 아무리 커도 주님보다는 작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큰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큰 일이야!”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일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큰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일도 작은 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내겐 이 까짓것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바오로 사도의 믿음과 자신감이 우리에게도 있어야겠습니다.
저는 늘 서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얼마나 든든히 서 있는지 시험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 듯 해요. ^^;
작은 바람에도 심하게 요동하는 자신을 발견했을때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 몰라요..
영도는 바닷가라 폭풍이 불면 정말 무섭답니다.
어젯 밤에도 폭우가 쏟아지니 겁이 나던걸요..ㅎㅎ
이 아침에 까짓것! 한번 외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