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 예레미야서는 의로운 싹에 대해 얘기합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오늘 복음은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의로움이란 무엇인가?
의로움의 싹이란 무엇이고 요셉의 의로움은 무엇인가 생각해봤습니다.
의로움이란 공의公義롭다는 말도 있듯이 사리사욕私利私慾과
거리가 먼 또는 사私가 없는 거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한 편이나 어느 한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닌,
공동선을 도모하는 것이 공의라고 하거나 의로움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요셉의 의로움의 출발/싹은 공동선을 도모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약혼자 마리아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점잖음이나 너그러움 같습니다.
사실 요셉의 최초 의로움은 이런 인간적인 의로움이었습니다.
한때 나의 사랑이었던 약혼자 마리아가 나의 씨를 배지 않고
다른 남자의 씨를 뱃는데도 배신감이나 자존심 때문에 그녀를
곤궁에 빠지게하지 않고 내가 참거나 희생하자는 정도의 의로움 말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말을 듣고는 구원의 협력자가 되기로, 그러니까
인류 구원이라는 공동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기로 마음 먹었을 겁니다.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것이 <의로운 싹>이 아닐까요?
인류의 구원이 싹트게 하는 작은 의로움 말입니다.
싹이란 아주 작지요.
그런데 거기서 큰 나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요셉의 의로움이 처음에는 인간적인 의로움이었고,
이순신의 의로움과 같은 대단한 의로움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그런데 이것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만나면서
한 민족을 구하는 의로움을 넘어 온 인류를 구원하는 싹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싹이 비를 만나 큰 나무가 되듯이
나의 인간적인 작은 의로움이 위에서 내려오는 은총을 만날 때
그것이 하느님의 구원을 이루는 싹이 되어 큰 의로움으로 자라나지만
내가 메시아 콤풀렉스에 빠져 내가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라고 생각하거나
자대망상自大妄想에 사로잡혀 나는 큰 인물이기에 큰 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은총 없이 하는 의로운 행위는 의로운 것도 아니게 되고
하느님의 구원을 이루는 의로운 싹은 더더욱 되지 못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남의 얘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의 얘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이런 잘못을 살아오면서 숱하게 범하였고
그럼에도 그 잘못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에서 비롯된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나는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그것도 지금의 작은 사랑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사랑으로 사랑을 하려다가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랑이고,
나의 사랑으로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으려다가 오히려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랑인 것이지요.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 다시 말해서 생각없이 우러나오는대로 사랑을
실천하였는데 나중에 누군가에게 사랑이 되고 열매를 맺은 경우도 있지요.
하느님께서 저도 모르는 사이 당신 사랑을 더해 주셔서 그리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사랑과 의로움은 작을수록
하느님 사랑의 도구가 되고 구원의 싹이 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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