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불확실한 현실이 주는 두려움에 직면하면 보험을 든다.
확실해 보이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험이 하느님 나라의 대체 수단이 되는 것이다.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
기도와 돈과 봉사를 바치는 것,
그것도 많이 바치면 바칠수록
하느님까지 조종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만들어 간다.
그러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되는 방법을 모색하느라 끊임없이 분주하고
더 많은 것을 쌓아놓기 위해 더 큰 창고를 짓느라 바쁘다.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마태23,23)처럼
중요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대신
자기로 넘쳐나는 자만심을 극대화하여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과 피조물과 하느님은 이용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위장된 통제,
하느님마저도 자신의 희생과 선한 행실로 통제하려는 것,
결국, 바쳐서 얻는 구원은 보험을 들어 놓는 결과이자 목적이 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운전대를 잡고 안전한 길을 찾아
가야 할 곳으로 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