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Jacob Wrestling with angels 1660 년)
작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
크기 : 켐퍼스 유채 :137cm X 116cm)
소재지: 독일 베를린 국립 미술관
작가는 개신교 신자들의 존경을 받는 작가이며 일생을 건강한 개신교 신자답게 성서와 더불어 산 인물이었다.
그의 인생은 굴곡이 많아 극단의 성공과 명성을 얻은 한편 그의 인간적 허약함에 의한 순탄치 못한 사생활에 의해 주위의 지탄을 받게 되면서 많은 것을 상실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내와 많은 자녀들을 잃어야 했고 여기에 겹쳐 그의 재산 역시 사려깊지 못한 처신으로 잃게 되었다.
말년에 그는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정신적인 지주로 성서 한 권을 붙들고 살았다는 것이 그의 신앙의 건강성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가 남긴 많은 작품은 성서의 내용이 많으며 특히 이 작품은 작가의 탁월하고 정확한 성서 이해로 심리묘사를 너무 잘 한 것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이사악의 아들 야곱은 끈질긴 집념으로 외적인 성공은 이루었으면서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간 인간의 모델이다
야곱은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많은 교훈과 생각 점을 줄 수 있는 인물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직장을 구한다는 것이 경쟁이 아닌 전쟁의 처절한 차원으로 변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영혼을 팔아야 하고 동료를 배신하면서도 자기 위치를 확보해야 하고 학창 생활 동안 정의나 진리 따위의 생각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사치로 여기며 영혼을 팔면서 적응해야 직장 생활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각박한 현실에서 야곱의 사화가 전하는 멧세이지는 참으로 크다고 볼 수 있다
야곱의 설화는 이런 우리의 현실에 필요한 빛을 조명할 수 있는 유익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바로 그날 밤 그는 일어나 ,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나루를 건넜다
그들을 데리고 개울을 건너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너 보냈다“( 창세기 32: 23- 24)
야뽁강은 요르단 강 지류중 하나로 이 강을 건는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 강을 건너감으로 말미암아 과거 집념 하나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을 살면서 얻었던 것들을 정리해서 , 자기 욕망의 성취를 성공으로 여기던 조잡하고 추악한 인간에서 탈피해서 미래의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모될 이스라엘 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신될 극적인 순간으로 변모된다.
대단한 집념의 사나이 야곱은 한치의 착오도 없이 자기의 계획을 실천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야뽁강을 건너 자기 고향으로 가서 자기의 성공을 과시하여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자기 성취감을 즐길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었다
아름답지도 옳지도 않는 삶을 외적인 성공이라는 포장지로 씌워진 인생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기 위해 그는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자기는 남아서 참으로 모처럼 고독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성공의 화신처럼 여겨지는 자신의 20년 삶을 회상하게 된다
형 에사오를 팥죽 한그릇으로 속여 장자권을 빼앗고,(창세기 25: 29- 34) 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여인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대단히 교활한 장인 라빈 가까이서 7년을 머슴으로 일하면서 라헬과 결혼코자 했으나 교활함의 수준이 자기 위에서 노는 장인 라빈의 농간에 의해 첫날밤을 언니 레아와 지내게 되고 다시 7년을 더 일해 라헬을 아내로 맞아 두 아내에 많은 자식을 얻게 되었다.(창세기 29: 15- 30)
이처럼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얻기 위해 14년의 세월을 장인의 머슴살이로 바칠만큼 대단한 집념의 인간이었다. 이런 그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초인적 집념에 의해 재산 역시 만만찮게 불어났다
이런 그의 집념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얻을 수 있는 행운을 움켜쥘 수 있었으나 그러나 고향을 찾아가는 그의 마음은 그리 기쁘지 않았다
자기에게 장자권을 빼앗긴 형 에사우가 복수를 하지 않을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자신을 엄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망에 충실했던 삶 역시 눈에 보이는 얻은 것은 많으나 삶에서 만족보다 허망감이 앞서는 감회였다
작가는 야곱의 얼굴 표정을 통해 그의 내적인 감회를 너무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이런 극적인 순간에 천사의 모습으로 오는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성서는 이런 극적인 순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나타나 동이 트기까지 그와 씨름을 했다.
그 남자는 야곱을 이겨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 뼈를 쳤다.
야곱은 그 남자와 씨름하다가 환도뼈를 다치게 되었다.
그 남자는 동이 밝아오니 이제 그만 놓으라고 했지만 야곱은 그에게 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놓아 드릴 수 없다고 떼를 썼다.” (창세기 32: 25- 29)
창세기는 여기서 이어지는 야곱의 생애에서 하느님의 개입을 알리는 중요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작가는 이 극적인 순간의 천사와 야곱의 심리 묘사를 탁월하게 하고 있다.
작가는 얼굴 표정을 통해 야곱의 내면을 정혹히 표현하고 있다
그늘진 야곱의 얼굴은 그가 얼마나 절박한 처지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념의 인간 야곱은 자신의 목표를 기대 이상으로 달성했으나 이것이 자신의 현실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임을 발견하면서 다시 자기 삶의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이 순간을 창세기는 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영적인 삶을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인생의 극적인 순간에 야곱과 같은 밤의 체험이 필요하다.
자기 인생의 성공에 들떠거나 실패에 함몰되지 않고 별을 볼 수 있는 칠흑과 같은 밤이 필요하다
야곱의 새로운 인생을 열어 줄 계기는 야곱의 사색이나 반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개입에서 오게 되었다는 것을 성서는 알리면서 인간적 노력의 한계와 함께 피할 수 없는 , 그러나 인간 집념으로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비길 수 없는 하느님의 개입으로 완성될 수 있는 충족된 행복의 경지를 전하고 있다.
천사가 붙들고 있기에 빠져 나올 수 없는 처지의 야곱이 여기서 당황하는 것이 아니라 역습으로 천사를 붙들고 축복을 달라는 억지(?)를 부린다
건장한 체격의 야곱은 천사가 자신을 축복해주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런데 힘센 야곱을 상대하는 천사의 표정은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너무 여유롭다.
천사의 얼굴엔 밤새 씨름을 하느라고 힘을 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천사의 얼굴에는 땀도 흐르지 않는 편안한 모습으로 , 그저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야곱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 하노라 여유가 없지만 천사는 야곱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포옹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가없는 사랑의 모습이 등장하게 된다.
이때 야곱은 자기의 이기적 집념으로 살아온 삶의 한계와 허점을 발견하면서 무었인가는 확실히 깨달을 수 없지만 하느님만이 자기 인생에 새로운 시작을 주실수 있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다.
내 삶을 변화시키고 바람직한 인생길로 방향 전환을 위해선 야곱이 야뽁강을 건너는 것 같은 새로운 삶의 시도와 함께 하느님 외에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 받거나 아니면 벗어난 상태에서 내 자신의 정확한 현주소를 먼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그리고 하느님의 안배 안에서 내 자신의 인생 나침반을 따라 바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순간 야곱에게 보낸 하느님의 천사가 도착해서 내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결단의 투쟁과 시도가 시작되고 이것이 바로 내 삶의 개선과 성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이런 체험은 한번으로 모든 것이 다 바뀌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점진적인 변화가 이어지는 것이다.
불교 용어로 돈오(頓悟) 점수(漸修) 라는 수행 과정이 있는데, 돈오는 불교에서 자주 인용되는 단번에 깨치는 상태을 말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상태를 멋진 것으로 여기고 동경하지만 실은 많은 경우에 점진적인 변화 즉 점수가 더 일상적이며 확실성이 있다
선불교의 전통에서 돈오를 주장하는 승려들에게 간혹 자신의 영적인 능력을 가이 신통력의 경지로 과장하면서 영적 삶이 현실에 뿌리가 없는 허황한 공상이나 망상의 영역으로 표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야곱이 오랫 동안 집념을 가지고 외골수로 투신했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에 몰두했던 과거 악습을 벗어나기 위해선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고 자연히 삶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오게 되었다
영적인 성장은 야곱의 경우처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매일 꾸준히 정진해야 하며 삶의 어떤 순간에 야뽁 강을 건너는 야곱처럼 나의 삶의 안정된 현실에서 탈출하는 도전을 해야 한다
영적인 목표를 이루려면 아곱에게 천사가 닥아온 것 처럼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고 이것이 바로 영성생활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으로 대변되는 천사는 야곱을 붙들고 놓지 않으시듯이 하느님은 언제나 당신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모든 이를 안아주시고 인도해 주신다.
하느님은 자기 변화를 바라는 이들을 절대로 외면하거나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두려워 말라 벌래 같은 야곱아! ,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 야훼의 말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를 구원하는 이다.”(이사야 41,14)
야곱은 하느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적인 눈으로 문제를 해결할려는 마음과 자기의 머리로 모든 것을 해결할려는 집념과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 사이에 조화를 찾지 못한 이중적 삶의 구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종종 불신으로 표현하지만 불신 보다는 약한 믿음이 더 어울리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방황의 순간이나 , 흔들리는 순간에도 항상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잊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이 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면 돌보아 주신다는 것이 바로 신앙의 기본인데 , 야곱은 바로 이런 확신을 얻기 위해 많은 시행 착오를 겪어야 했다.
작가의 이 작품 욕망의 극대화를 성공의 모델로 여기며 , 극단의 집념 표현을 지혜로 여기는 현대 젊은이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야곱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세 삶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며 살아가는 오늘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이룬 성공 후의 미래상을 제시하면서 잠시 자기안으로 돌아와 야곱처럼 자신을 가다듬게 만드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