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저의 신앙이 조금은 깊어졌나봅니다.
예수께서 으스러진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 다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씀.
이 말씀을 들으며
당신의 아들도 이렇게 고통 받게 하시는데
우리도 당연히 으스러지고 병고에 시달리게 하시리라는 것을
이제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니 말입니다.
우리가 으스러지고 병고에 시달리는 것이 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씀,
두렵기는 하지만 “왜?”라고 따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고통을 주셔도
다른 사람에게만은 주지 마시라고도 얘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마음과 정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특히
고통이 많은 사람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고통이 덮치지 않게 되기를 바라지만
신앙으로는 ‘당신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라고 받아들입니다.
다만,
그에게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통을 어떻게 같이 짊어질 수 있을까 생각할 뿐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같이 짊어지지 않지만 마음은 그렇다는 뜻입니다.
실감합니다.
남의 고통을 짊어지고,
더 나아가서 그의 죄악까지 짊어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지,
얼마나 진짜 사랑해야 하는지 깊이 실감합니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영웅 심리로
남의 고통과 죄악을 짊어지려하였고 짊어지기도 하였지만
영웅 심리마저 사라지고 참으로 힘이 없음을 절감하는 지금은
진정 야훼의 종이 되지 않으면,
진정 종의 종이 되지 않으면,
다시 말해 밑에서도 밑이 되지 않으면,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한 사람의 고통도 죄악도 지지 못함을 절감합니다.
무엇을 진다는 것은 위에서 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 아니 밑에서 지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는
주님의 말씀을 오늘 무겁게 듣습니다.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저의 신앙이 조금은 깊어졌나봅니다.
예수께서 으스러진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 다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씀.
이 말씀을 들으며
당신의 아들도 이렇게 고통 받게 하시는데
우리도 당연히 으스러지고 병고에 시달리게 하시리라는 것을
이제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니 말입니다.
우리가 으스러지고 병고에 시달리는 것이 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씀,
두렵기는 하지만 “왜?”라고 따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고통을 주셔도
다른 사람에게만은 주지 마시라고도 얘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마음과 정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특히
고통이 많은 사람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고통이 덮치지 않게 되기를 바라지만
신앙으로는 ‘당신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라고 받아들입니다.
다만,
그에게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통을 어떻게 같이 짊어질 수 있을까 생각할 뿐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같이 짊어지지 않지만 마음은 그렇다는 뜻입니다.
실감합니다.
남의 고통을 짊어지고,
더 나아가서 그의 죄악까지 짊어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지,
얼마나 진짜 사랑해야 하는지 깊이 실감합니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영웅 심리로
남의 고통과 죄악을 짊어지려하였고 짊어지기도 하였지만
영웅 심리마저 사라지고 참으로 힘이 없음을 절감하는 지금은
진정 야훼의 종이 되지 않으면,
진정 종의 종이 되지 않으면,
다시 말해 밑에서도 밑이 되지 않으면,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한 사람의 고통도 죄악도 지지 못함을 절감합니다.
무엇을 진다는 것은 위에서 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 아니 밑에서 지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는
주님의 말씀을 오늘 무겁게 듣습니다.
이 땅의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걸 일이 아니라
형제와 이웃, 세상을 향해 부담감을 가지는 사람임을 묵상합니다.
사람이나 상황이나 사건을 대할 때
지나치거나 외면하지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짐을 함께 들어주어야하는 부담감..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답게..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그렇게 살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신부님 강론을 묵상하며 깨닫습니다.
말씀앞에서 제 신발 끈을 단단히 묶어봅니다.
다시 흐트러지지 않도록..
신부님! 오늘도 좋은 주일되셔요 ^^
결코 한 사람의 고통도 죄악도 지지 못함을 절감합니다.-
지금으로선 저 하나의 고통도 제대로 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다른 한 사람의 고통조차도 어림 없음을 압니다.
그러나
어쩌면 단 한 사람만의 고통이라도 기꺼이 짊어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해 봅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