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따름이 불편한 부자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주님 말씀하시는데
돈이 얼마 이상이 있어야 부자인가?
10억 이상은 되어야 부자일까?
그리고 나는 부자인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나는 부자가 아니어야 하고,
그래서 나는 부자가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아니라고 절대 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에서 얘기하는 부자는 세상의 백만장자 클럽처럼
계량화하여 얘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나는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을 때도 저는 가난하지 않은 저를 자책했지요.
그것은 복음에서 얘기하는 부자의 기준이 하늘나라이기 때문일 겁니다.
가진 것이 비록 100만 원밖에 안 되어도 그것을 버릴 수 없고
그래서 그것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100만 원을 가진 나는 부자입니다.
오늘의 주님 말씀은 어제 부자 청년의 사건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늘나라는 주님을 따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데,
그는 주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가진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하고
누리고 있는 안락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 그에게 영원한 생명이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고 영원히 소유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안락을 깨지 않고 영원히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진시황이 찾던 바로 그것이지요.
이번 여름 저희 수련자들과 함께 체험을 하면서
저는 새삼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3주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내 집, 내 방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전과 달리 떠돌이 생활이 너무 고달프고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아무 데서나 머물어야 하니 식사, 잠자리, 샤워실 등 모두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화장실 불편한 것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제가 주님을 따라 나설 수 있을지,
나섰다 하더라도 그 삶을 계속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부유함이란 있어야 할 것이 다 있는 편안함이고
가난함이란 있어야 할 것이 변변히 있지 않은 불편함이며,
가난함이란 불편함에 익숙하기에 주님 따름이 불편하지 않음이고
부유함이란 편안함에 익숙하기에 주님 따름이 불편함인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불편한 부유함,
그것이 저의 부유함입니다.
그러니 제가 가진 것이 많지 않다고 해서 부유하지 않다고,
아니 더 나아가서 가난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따라 나서지 못하는 사람은 다 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