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족보의 맨 끝에 예수님이 있고,
그리고 바로 그 앞에 요셉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은 어제 족보를 얘기함으로써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선대로부터 이어진 존재인 양 얘기하더니
오늘은 요셉 얘기를 하면서
예수님이 요셉에게서 나온 분이 아니라
성령으로 태어난 분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사가가 지금 앞에 있다면 따지게 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 도대체 뭐하자는 것입니까?!
오늘 예수께서 성령으로 태어났다고 얘기할 거면서
왜 어제는 그렇게 길게 족보를 들먹였습니까?
요셉의 아들이라는 얘깁니까, 아니라는 얘깁니까?
말하자면 길지만 쉽게 얘기하면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아들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요셉의 아들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얘기지요.
요셉을 중심으로 보면
아버지 역할은 하되 아버지의 소유권은 주장하지 말라는 얘기지요.
대단히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힘든 아버지의 역할과 책임은 다 하되
아들에 대한 소유권은 행사하지 말라니 말입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잘 관리하고 간수하되
먹지는 말라는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가혹합니까?
그러나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관계가 아닐 수도 있는 요셉이
그분의 아버지가 되는 영광을 받게 된 것으로 말입니다.
요즘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입양을 하는 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젊은 부부도 오래 노력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자
아이를 입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자기들의 아이가 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아이를 입양하려고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입양을 알선하는 여러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들이 원하는 아이를 입양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대단한 행운으로 생각했고 행복해했습니다.
저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고자입니다.
수도자가 되었으니 생물학적인 고자는 아니지만
영적인 고자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분은 절대로 낳을 수 없는 고자입니다.
이런 고자가 예수님의 아비가 된다면 그것만도 대단한데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된다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본래 영적인 고자였지만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면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아무 공로도 없는 요셉에게
성령께서 주님을 선사하셨으니 말입니다.
그 족보의 맨 끝에 예수님이 있고,
그리고 바로 그 앞에 요셉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은 어제 족보를 얘기함으로써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선대로부터 이어진 존재인 양 얘기하더니
오늘은 요셉 얘기를 하면서
예수님이 요셉에게서 나온 분이 아니라
성령으로 태어난 분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사가가 지금 앞에 있다면 따지게 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 도대체 뭐하자는 것입니까?!
오늘 예수께서 성령으로 태어났다고 얘기할 거면서
왜 어제는 그렇게 길게 족보를 들먹였습니까?
요셉의 아들이라는 얘깁니까, 아니라는 얘깁니까?
말하자면 길지만 쉽게 얘기하면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아들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요셉의 아들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얘기지요.
요셉을 중심으로 보면
아버지 역할은 하되 아버지의 소유권은 주장하지 말라는 얘기지요.
대단히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힘든 아버지의 역할과 책임은 다 하되
아들에 대한 소유권은 행사하지 말라니 말입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잘 관리하고 간수하되
먹지는 말라는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가혹합니까?
그러나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관계가 아닐 수도 있는 요셉이
그분의 아버지가 되는 영광을 받게 된 것으로 말입니다.
요즘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입양을 하는 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젊은 부부도 오래 노력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자
아이를 입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자기들의 아이가 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아이를 입양하려고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입양을 알선하는 여러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들이 원하는 아이를 입양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대단한 행운으로 생각했고 행복해했습니다.
저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고자입니다.
수도자가 되었으니 생물학적인 고자는 아니지만
영적인 고자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분은 절대로 낳을 수 없는 고자입니다.
이런 고자가 예수님의 아비가 된다면 그것만도 대단한데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된다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본래 영적인 고자였지만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면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아무 공로도 없는 요셉에게
성령께서 주님을 선사하셨으니 말입니다.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도 뽑히셨습니다.
당쇠 신부님께서도 뽑히시어
매일 매일 사랑을 낳고 계십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깊이 숙고해 보면 또 맞는 말씀이고 이해가 가지요.
허나 이해한 것을 위와 같이 받아들이고 살기는 인간적으로 어렵습니다.
어제 상대가 자신에게 기울이는 나의 마음이 조건 없는 사랑으로 느껴 졌는지
고마워 하는 그에게 제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나도 내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잘 모른단다.
그러니 이런 날 위해 네가 기도해 다오!"라고 하는
그와 나사이에 하느님의 현존이 느껴졌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