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성탄을 앞두고 천사는 연일 바쁘고
성령께서도 맹활약하십니다.
천사는 탄생을 예고하고
성령은 예고한 것을 이루십니다.
탄생 예고를 들은 세 사람 중에
요셉과 마리아는 그 예고를 믿고
오늘 보는 즈카르야는 믿기 어려워합니다.
즈카르야는 왜 못 믿었을까요?
너무 늙어서?
요셉과 마리아는 젊은데 즈카르야는 너무 늙어서?
사실 어린 아이는 잘 믿지요.
모든 존재를 ‘참’으로 믿습니다.
말을 ‘참’으로 믿을 뿐 아니라 존재를 ‘참’으로 믿습니다.
사실 누구의 말을 참말로 믿지 못함은
그 말을 참말로 믿지 못하기 전에 그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는 모든 존재를 선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나쁜 사람 많으니 따라가지 말라고 부모가 얘기해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따라가 유괴되곤 합니다.
나쁜 사람에 대한 경험을 한 적이 별로 없고
경험을 한 것은 늘 잘 해 주는 부모밖에 없기에
다 부모와 같다고 하는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능력을 믿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아버지가 모든 것 다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어린 아이가 크면서 차츰 모든 믿음이 깨집니다.
살아갈수록 인간이란 얼마나 거짓이 많고
존재의 거짓에서 거짓된 말들이 나오는지 경험합니다.
살아갈수록 인간이란 얼마나 악한지 경험하고
얼마나 악한 사람이 많은지 경험합니다.
살아갈수록 자신을 비롯하여 인간이란 얼마나 유한한지도 경험합니다.
그러니 나이가 많을수록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듯도 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더욱이 하느님께 대해서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믿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거짓을 하느님의 거짓으로 투사하지 않는 한,
인간의 악함을 하느님의 악함으로 확대하지 않는 ,
인간의 한계를 하느님의 한계로 착각하지 않는 한,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하느님을 더 체험하고 하느님을 더 믿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의 거짓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의 참됨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인간의 악함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의 선을 갈망하게 되며
인간의 한계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의탁하게 됩니다.
그러니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함은 즈카르야가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비의 문을 잠그고 성령의 활약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천박한 경험에 자신을 가두고
일천한 앎으로 하느님의 가능성을 일축한 것입니다.
마치 접시 물에 코를 처박고 죽는 꼴입니다.
그러나 신비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어보십시오.
하느님의 무한이 무한히 열립니다.
잠수정의 문을 열면 깊은 바다가 펼쳐지고,
인공위성의 문을 열면 광대한 우주가 펼쳐지듯,
하느님의 깊이와 높이가 열리고
하느님의 크심이 무한히 펼쳐집니다.
그리고 신비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면
무한이 안으로 들어오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둥지를 트십니다.
그리고 생명과 사랑이 그 둥지에서 자랍니다.
성령께서도 맹활약하십니다.
천사는 탄생을 예고하고
성령은 예고한 것을 이루십니다.
탄생 예고를 들은 세 사람 중에
요셉과 마리아는 그 예고를 믿고
오늘 보는 즈카르야는 믿기 어려워합니다.
즈카르야는 왜 못 믿었을까요?
너무 늙어서?
요셉과 마리아는 젊은데 즈카르야는 너무 늙어서?
사실 어린 아이는 잘 믿지요.
모든 존재를 ‘참’으로 믿습니다.
말을 ‘참’으로 믿을 뿐 아니라 존재를 ‘참’으로 믿습니다.
사실 누구의 말을 참말로 믿지 못함은
그 말을 참말로 믿지 못하기 전에 그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는 모든 존재를 선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나쁜 사람 많으니 따라가지 말라고 부모가 얘기해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따라가 유괴되곤 합니다.
나쁜 사람에 대한 경험을 한 적이 별로 없고
경험을 한 것은 늘 잘 해 주는 부모밖에 없기에
다 부모와 같다고 하는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능력을 믿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아버지가 모든 것 다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어린 아이가 크면서 차츰 모든 믿음이 깨집니다.
살아갈수록 인간이란 얼마나 거짓이 많고
존재의 거짓에서 거짓된 말들이 나오는지 경험합니다.
살아갈수록 인간이란 얼마나 악한지 경험하고
얼마나 악한 사람이 많은지 경험합니다.
살아갈수록 자신을 비롯하여 인간이란 얼마나 유한한지도 경험합니다.
그러니 나이가 많을수록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듯도 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더욱이 하느님께 대해서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믿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거짓을 하느님의 거짓으로 투사하지 않는 한,
인간의 악함을 하느님의 악함으로 확대하지 않는 ,
인간의 한계를 하느님의 한계로 착각하지 않는 한,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하느님을 더 체험하고 하느님을 더 믿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의 거짓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의 참됨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인간의 악함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의 선을 갈망하게 되며
인간의 한계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의탁하게 됩니다.
그러니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함은 즈카르야가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비의 문을 잠그고 성령의 활약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천박한 경험에 자신을 가두고
일천한 앎으로 하느님의 가능성을 일축한 것입니다.
마치 접시 물에 코를 처박고 죽는 꼴입니다.
그러나 신비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어보십시오.
하느님의 무한이 무한히 열립니다.
잠수정의 문을 열면 깊은 바다가 펼쳐지고,
인공위성의 문을 열면 광대한 우주가 펼쳐지듯,
하느님의 깊이와 높이가 열리고
하느님의 크심이 무한히 펼쳐집니다.
그리고 신비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면
무한이 안으로 들어오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둥지를 트십니다.
그리고 생명과 사랑이 그 둥지에서 자랍니다.
모든 만물들이
모든 상황들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것 입니다.
나의 거짓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의 참됨을 더 깊이 알게 되고,
나의 악함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의 선을 갈망하게 되며
나의 한계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의탁하게 됩니다.
이제는 하느님만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