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1일 연중 제12주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두려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는 육적인 차원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의미는 영적인 차원으로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두려움은 하느님의 선에 대한 사랑에서 옵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반성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두려움은 신앙의 기본원리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두려움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지혜는 가장 참된 진리를 아는 것이며 우리 영혼의 정직성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체험합니다. 지혜는 우리 자신 안에 계시는 하느님과 하느님 안에 있는 우리를 압니다. 지혜에 이르는 첫 단계인 두려움은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합니다. 지혜의 시작은 죄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가져다주고 그분 곧 진리의 빛이 우리의 양심 안에서 빛나게 해줍니다.
육적인 차원의 명예욕에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두려움이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닙니다. 명예욕은 특히 완벽주의로 나타납니다. 완벽주의 배경에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깊은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겸손의 목표는 모든 두려움을 추방하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육적인 차원의 두려움은 이기주의에서 옵니다.
타인보다 더 낫게 보이려는 하는 육적인 욕구는 그 뒤에 있는 것이 바로 나의 두려움이며 불안이라는 것, 무시되고 소외된다는 두려움, 나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 두려움,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고통 중에 있는 다른 이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는 것, 아마도 내가 실제의 나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게으름과 비겁은 영적생활에 있어 가장 큰 적입니다. 게으름과 비겁은 하느님의 사랑보다 우리 자신의 현재의 안락함을 더 중시합니다. 그것들은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으므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합니다. 교만은 자기 안에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잃어버릴 까봐 자기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지나치게 요구하게 됩니다. 때로는 두려움은 자신을 폐쇄적으로 만듭니다. 두려움은 완벽주의에서 생겨납니다.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낍니다. 결국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은 교만입니다.
우리 내면에는 육적인 두려움과 영적인 두려움인 경외심이 공존합니다. 성서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경외심을 깨어나게 하고 자라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은 하느님의 말씀안에서 겸손을 지니며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인 경외심으로 욱적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 도미니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