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믿음의 실천적 모델
나는 내 믿음의 실천적 모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택한 사실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에는 그분을 따라야 할 모델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었으며
하느님의 신성을 지니신 분으로 알고
무엇인가를 바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종교적 행위를
믿음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영적으로 눈이 멀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성보다 신성이 강조되어 전달된 종교교육과 교리는
그분을 따라야 할 대상보다는
두려움 속에서 가까이하기에는 불가능한 분으로 만들었으며
심판과 벌이 너무나 무서워서
무엇인가를 계속 바쳐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게 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전반기를 마치고 후반기를 시작할 무렵
안식년을 맞아 “길에서 길을 만나 길이 되다.”라는 책을 썼다.
거기서 나는 나에게 길이 되시고 마침내 나도 그 길을 따라 그분처럼
되어가는 여정이 분명한 나의 목표가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참된 사람으로 존재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할 시간에
하느님의 독생 성자를 예배하는 일에 몰두해온 것이다.
성프란치스코는 그분의 발자취를 바로 뒤에서 철저하게 따르려고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하느님의 가난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였고
하느님의 겸손하심과 선하심을 끊임었이 실천 가능한 일로 만들어갔다.
주님의 영과 영의 활동을 지니고 형제들을 섬기면서 살았다.
인간 예수께서는 비유와 실천적 만남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실천적 만남은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이었다.
그분은 사람들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마주 보면서 병을 고쳐주었다.
그것은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만남이었다.
우리는 관계가 무너져 내린 곳에서조차 대면을 피하려고
예배에 집중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양의 기도와 봉사, 희생을 바치고
그 대신 자기가 해야 할 숙제를 하느님께 미룬다.
관계회복을 위한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이라는 이유로 사과와 보상을 한다고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
더 큰 문제를 만들거나 아픈 상처를 더 아프게 할 수 있다.
이웃에 대한 모든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은
온갖 선입견과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말하고
일그러지고 비뚤어진 오해와 뜬소문을 만들어 낼 뿐이다.
진지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들조차 이런 뜬 소문에 의해
진실하지도 않고 도움도 되지 않는 성급한 판단을 내려
본인과 남들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보상하는 지혜는
슬기롭게 배워야 할 덕이다.
직접 대면하여 보상하는 일과
사람들을 헤치지 않으면서 보상하는 일이 그것이다.
진실한 사랑이 있으면 지혜롭게 그 일을 할 수 있다.
조언을 구하거나 방법을 찾는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을 찾고
사랑은 언제나 진리를 찾기 때문이며
진리는 언제나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게 그렇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