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닦기
포도나무에 연결된 가지들은 안에서부터 깨끗한 그릇으로 남아있기 위하여
깨어있으려는 긴장을 멈추지 않는다.
참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들은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무의식이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마르코 7,20-21)
그러므로 우리는 안으로부터 우리를 바꿔놓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릇의 겉을 닦는데 매달리지 말고
그 안을 깨끗이 닦으라고 하셨다. (마태오 23,25-26)
내부를 깨끗이 하는 일은 길고 험난한 길이다.
하루하루가 끊임없는 선택으로 이어져 있다.
자고나면 또다시 중심을 바꾸라는 몸의 요구가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몸의 요구와 영의 목소리가 충돌하는 거기에 기도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양심 안에서 내면의 목격자는 영에 충실하라 하고
몸의 요구는 지금의 이익과 즐거움과 편함을 따르라고 부추기기 때문에
자유로운 선택에는 언제나 몸의 요구대로 끝날 때기 많다.
주님의 영과 깨어있는 연결로 이끌어 주는 기도와 묵상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실천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통치에 우리의 의지를 내어드리려는 진정성이 있는가?
하느님의 뜻은 운명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이루는 창조 행위에 우리의 의지로 응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도와 헌신의 삶은 살려내는 생명과 죽이는 죄의 상황에서
선으로 드러나는 창조 행위에 하느님과 협력하는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든 여정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하느님이 내 인생을 바꾸시도록 나를 기꺼이 내어드리는 여기에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 있다.
하느님을 설득하여 내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품는 것이
사실상 가장 진정한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몸의 요구는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놓는다.
그리고 나의 기도는 이미 응답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면을 깨끗하게 하는 작업을 내 의지로 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바꾸고
아버지의 이름보다 자신의 이름을 확장시키고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보다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가 되기를 꿈꾸어 왔다는 사실을
주님의 기도를 할 때마다 상기하면 좋겠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마태오 10,40)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 25,40)
관계 안에서 발견하는 하느님 나라,
상대방에게서 한계를 발견하면
선을 행하기 위하여
입은 다물고, 마음은 너그럽고 평화롭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