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우리 사이에 누가 더 요구사항이 많을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많을까,
우리가 주님께 요구하는 것이 많을까?
저를 돌아봤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로 요구하는 것은 많은데
저 자신을 위해 주님께 요구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 요구할 필요도 없게 미리 다 주신 것이겠지요.
왜냐면 제가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요구사항이 없겠습니까?
저는 한 끼라도 못 먹으면 벌써 요구사항이 생기고,
몸이 조금 불편해도 요구사항이 생깁니다.
하느님께서 채워주시지 않으면 결핍 투성인 존재이니
말로만 요구하지 않았을 뿐이지 존재 자체가 요구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도 말로서 요구사항을 많이 얘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 먹어 결핍이 많이 느껴질 그때도
그것을 결핍으로 생각지 않는 무욕의 상태가 저이기를 바라고
욕구가 있더라도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님께 요구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거듭 얘기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하느님께 대한 저의 요구사항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것입니다.
반면 우리 인간에게 대한 하느님의 요구사항은 어떻습니까?
하느님의 요구사항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하느님의 요구사항은 없기도 하고 많기도 합니다.
하느님 당신 자신을 위한 요구사항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이며
당신을 위해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自滿自足하시는 분이신데 우리에게 무얼 바라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사실은 참으로 많으십니다.
어떤 때는 그 요구사항이 너무도 많아서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복음을 보면 이래라저래라 하라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듣기 싫어하고 귀찮아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밥 먹으라는 것과 같고
길을 갈 때 조심하라는 것과 같고
이웃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의 경우 제가 보살펴 드려야 하는 높은 연세인데도
늘 아침 밥 거르지 말고 잘 먹으라는 잔소리를 하십니다.
전에는 그것을 무척 귀찮게 여기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면 그런 잔소리 해 줄 사람도 없을 것 생각하고
요즘은 ‘알았습니다, 잘 먹겠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구약에서는 규정과 법규들이고 복음에서는 복음적 권고입니다.
이것은 다 우리를 잘 살게 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신명기는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고 얘기하고
복음은 율법의 작은 계명까지도 충실히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많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요구를 더 많이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요구사항이 얼마나 많고 까다롭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의 요구에 늘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말하자면, 하느님은 늘 우리의 요구에 'Stand by'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많을까,
우리가 주님께 요구하는 것이 많을까?
저를 돌아봤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로 요구하는 것은 많은데
저 자신을 위해 주님께 요구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 요구할 필요도 없게 미리 다 주신 것이겠지요.
왜냐면 제가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요구사항이 없겠습니까?
저는 한 끼라도 못 먹으면 벌써 요구사항이 생기고,
몸이 조금 불편해도 요구사항이 생깁니다.
하느님께서 채워주시지 않으면 결핍 투성인 존재이니
말로만 요구하지 않았을 뿐이지 존재 자체가 요구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도 말로서 요구사항을 많이 얘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 먹어 결핍이 많이 느껴질 그때도
그것을 결핍으로 생각지 않는 무욕의 상태가 저이기를 바라고
욕구가 있더라도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님께 요구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거듭 얘기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하느님께 대한 저의 요구사항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것입니다.
반면 우리 인간에게 대한 하느님의 요구사항은 어떻습니까?
하느님의 요구사항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하느님의 요구사항은 없기도 하고 많기도 합니다.
하느님 당신 자신을 위한 요구사항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이며
당신을 위해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自滿自足하시는 분이신데 우리에게 무얼 바라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사실은 참으로 많으십니다.
어떤 때는 그 요구사항이 너무도 많아서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복음을 보면 이래라저래라 하라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듣기 싫어하고 귀찮아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밥 먹으라는 것과 같고
길을 갈 때 조심하라는 것과 같고
이웃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의 경우 제가 보살펴 드려야 하는 높은 연세인데도
늘 아침 밥 거르지 말고 잘 먹으라는 잔소리를 하십니다.
전에는 그것을 무척 귀찮게 여기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면 그런 잔소리 해 줄 사람도 없을 것 생각하고
요즘은 ‘알았습니다, 잘 먹겠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구약에서는 규정과 법규들이고 복음에서는 복음적 권고입니다.
이것은 다 우리를 잘 살게 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신명기는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고 얘기하고
복음은 율법의 작은 계명까지도 충실히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많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요구를 더 많이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요구사항이 얼마나 많고 까다롭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의 요구에 늘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말하자면, 하느님은 늘 우리의 요구에 'Stand by'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오장 육부 까지 훤히 들여다 보시는 나의 하느님 !
밤새 내린 春雪 로 커다란 하얀 나무가 되어서
한 없이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깊이 묵상 했습니다.
늘 귀한 묵상을 나누어 주시니
신부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신부님, 아침 흰눈으로 부라보~~
우리의 요구에 언제나 stand by 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게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