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는 회의를 위해 산청을 다녀왔습니다.
새벽에 출발하여 내려갈 때는 전 날 내린 눈이 축복처럼 쌓여
아름다움이 마음을 씻어주듯 눈처럼 마음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의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올 때는 거짓말처럼
축복이 사라지고 아름다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햇볕에 눈이 다 녹아 버린 것입니다.
거짓이요 사기였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사기다.”
이것이 그 때 느낀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사기고,
사랑이 없으면 축복도 사기고,
사랑이 없으면 찬사도 사기고,
사랑이 없으면 즐거운 대화도 사기고,
사랑이 없으면 그 무엇도 거짓이요 사기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남는 것이 없는 법.
추억이라도 남으려면 사랑이 있어야 하지요.
사랑이 없으면 조금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나무에 얹힌 눈 잠깐 머물다 한 순간에 사라지듯
그 무엇도 남기지 못하고 표피에 머물다 사라집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호세아서는 표현들이 참 간절하고 호소력이 있습니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는 이 표현부터
“찢으셨지만 고쳐주시고, 치셨지만 싸매주시리라.”는 표현과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는 표현까지
참으로 간절하고 마음까지 파고듭니다.
그런데 이 표현들이 이렇게 간절함으로 우리를 파고드는 것은
우리의 무심함에 대한 아픔 때문입니다.
호세아의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찌릅니다.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하느님은 우리를 찌르며 들어오시고 치고 들어오시는데
우리는 태평하고
하느님은 찌르고 아프게 한 것이 괴로워 우리를 고치고 싸매시는데
우리는 무심합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는 참 信義가 없습니다.
복음으로 가면 더 기가 막힙니다.
하느님은 우리 영혼 상태 때문에 아파하시고 걱정하시는데
인간은 그것도 모르고 뻔뻔스럽게 자랑이나 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이들은 스스로 義롭지만 信義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하느님 앞에 서고 하느님께 기도 드리지만
사실 주님 말씀대로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 안에서는 전혀 메아리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의에 도취하는 Narcissist일 뿐입니다.
반면 세리는 하느님 앞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멀찍이 서 있지만
오히려 이 세리의 마음 안에 하느님의 자비가 스며듭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바리사이한테는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하실 것이 없으셨지만
세리한테는 사랑이 주특기이신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수 있으셨기에 신이 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세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출발하여 내려갈 때는 전 날 내린 눈이 축복처럼 쌓여
아름다움이 마음을 씻어주듯 눈처럼 마음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의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올 때는 거짓말처럼
축복이 사라지고 아름다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햇볕에 눈이 다 녹아 버린 것입니다.
거짓이요 사기였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사기다.”
이것이 그 때 느낀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사기고,
사랑이 없으면 축복도 사기고,
사랑이 없으면 찬사도 사기고,
사랑이 없으면 즐거운 대화도 사기고,
사랑이 없으면 그 무엇도 거짓이요 사기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남는 것이 없는 법.
추억이라도 남으려면 사랑이 있어야 하지요.
사랑이 없으면 조금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나무에 얹힌 눈 잠깐 머물다 한 순간에 사라지듯
그 무엇도 남기지 못하고 표피에 머물다 사라집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호세아서는 표현들이 참 간절하고 호소력이 있습니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는 이 표현부터
“찢으셨지만 고쳐주시고, 치셨지만 싸매주시리라.”는 표현과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는 표현까지
참으로 간절하고 마음까지 파고듭니다.
그런데 이 표현들이 이렇게 간절함으로 우리를 파고드는 것은
우리의 무심함에 대한 아픔 때문입니다.
호세아의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찌릅니다.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하느님은 우리를 찌르며 들어오시고 치고 들어오시는데
우리는 태평하고
하느님은 찌르고 아프게 한 것이 괴로워 우리를 고치고 싸매시는데
우리는 무심합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는 참 信義가 없습니다.
복음으로 가면 더 기가 막힙니다.
하느님은 우리 영혼 상태 때문에 아파하시고 걱정하시는데
인간은 그것도 모르고 뻔뻔스럽게 자랑이나 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이들은 스스로 義롭지만 信義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하느님 앞에 서고 하느님께 기도 드리지만
사실 주님 말씀대로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 안에서는 전혀 메아리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의에 도취하는 Narcissist일 뿐입니다.
반면 세리는 하느님 앞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멀찍이 서 있지만
오히려 이 세리의 마음 안에 하느님의 자비가 스며듭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바리사이한테는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하실 것이 없으셨지만
세리한테는 사랑이 주특기이신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수 있으셨기에 신이 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세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신부님~늘 깨우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며 언제나 꼿꼿히
서 있기를 좋아합니다.
이 교만한 마음에도 주님의 자비가 임하기를 청하여봅니다.
죄인의 자리에 서는 은총을 주셨으니,
나의 삶이 그 은혜만을 영원히 찬미하며
증거하는 순간들로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없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부님! 오늘도 좋은 주말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