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사순 제 4주일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사순시기가 깊어짐에 따라 그 의미도 더 깊어집니다. 교회는 회개에 있어서 많은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바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시작의 단계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은 회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리움과 결부해서 오늘 복음에서 돌아온 탕자의 작은 아들의 인간적인 감정을 집어넣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회개를 설명하면서 우리는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을 합니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돌아봐야하겠지요? 천천히 생각해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우리는 곧잘 사랑하는 연인들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지는 장면을 접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안녕을 말하고 다시 돌아서서 혹은 눈감은 시간동안 보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조금은 닭살스러운 대사를 듣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관계 안에서 뒤를 돌아봅니다. 먼 길을 떠나면서 어머니가 손을 흔들며 건강을 비는 모습을 뒤로 하기도하고, 수많은 이별이 있습니다. 그 다음엔 정겨운 집에 나무에 풀 한포기에 마을에 강과 산과 들판을 지나가면서 다시 한 번 더 눈을 맞추고 그렇게 아쉬움을 그리움에 더하여 그 장소 그 시간에 마음의 한 부분을 가만히 내려놓게 됩니다. 그런 후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그 잊어버렸던 마음의 한 부분을 들어 올려 그리움에 젖게 됩니다.
회개는 이 길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보고 떠올리고, 작은 사랑의 느낌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커지며 현실화 되어 내가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종국에는 단순히 눈으로 감각적으로 느끼는 거리를 없애어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정말 가까운 거리는 눈에 담을 수 없습니다. 그만 눈을 감아버리고 말게 되지요. 눈을 감고 한숨, 심장고동소리, 스치는 바람, 부서지는 햇살등 가만히 그 분의 품 안에서 일치의 행복을 누리게 되는 길고긴 여정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작은 아들의 돌아오기까지의 험한 길을 얘기하고 마지막 부분에 큰아들에게 하는 아버지의 말씀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함께 있는 기쁨은 쉽게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는 극적인 기쁨만을 바라보며 보다 사랑에 예민해지지 못합니다. 일치의 기쁨은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고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고, 그 기쁨을 누립니다. 하느님의 기쁨으로 가득차고 그것을 누리기에도 바쁘니 말입니다. 회개의 길은 힘든 길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죽었다가 살아나는 계속되는 회개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말입니다.
큰 아들이라도 작은 아들이라도 하느님과의 일치를 방해하는 유혹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혹에 빠지기 이전에 더 즐기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영원히 공평하게 우리에게 처한 상황에 맞게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사순 제 4주일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사순시기가 깊어짐에 따라 그 의미도 더 깊어집니다. 교회는 회개에 있어서 많은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바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시작의 단계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은 회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리움과 결부해서 오늘 복음에서 돌아온 탕자의 작은 아들의 인간적인 감정을 집어넣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회개를 설명하면서 우리는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을 합니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돌아봐야하겠지요? 천천히 생각해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우리는 곧잘 사랑하는 연인들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지는 장면을 접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안녕을 말하고 다시 돌아서서 혹은 눈감은 시간동안 보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조금은 닭살스러운 대사를 듣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관계 안에서 뒤를 돌아봅니다. 먼 길을 떠나면서 어머니가 손을 흔들며 건강을 비는 모습을 뒤로 하기도하고, 수많은 이별이 있습니다. 그 다음엔 정겨운 집에 나무에 풀 한포기에 마을에 강과 산과 들판을 지나가면서 다시 한 번 더 눈을 맞추고 그렇게 아쉬움을 그리움에 더하여 그 장소 그 시간에 마음의 한 부분을 가만히 내려놓게 됩니다. 그런 후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그 잊어버렸던 마음의 한 부분을 들어 올려 그리움에 젖게 됩니다.
회개는 이 길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보고 떠올리고, 작은 사랑의 느낌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커지며 현실화 되어 내가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종국에는 단순히 눈으로 감각적으로 느끼는 거리를 없애어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정말 가까운 거리는 눈에 담을 수 없습니다. 그만 눈을 감아버리고 말게 되지요. 눈을 감고 한숨, 심장고동소리, 스치는 바람, 부서지는 햇살등 가만히 그 분의 품 안에서 일치의 행복을 누리게 되는 길고긴 여정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작은 아들의 돌아오기까지의 험한 길을 얘기하고 마지막 부분에 큰아들에게 하는 아버지의 말씀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함께 있는 기쁨은 쉽게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는 극적인 기쁨만을 바라보며 보다 사랑에 예민해지지 못합니다. 일치의 기쁨은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고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고, 그 기쁨을 누립니다. 하느님의 기쁨으로 가득차고 그것을 누리기에도 바쁘니 말입니다. 회개의 길은 힘든 길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죽었다가 살아나는 계속되는 회개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말입니다.
큰 아들이라도 작은 아들이라도 하느님과의 일치를 방해하는 유혹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혹에 빠지기 이전에 더 즐기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영원히 공평하게 우리에게 처한 상황에 맞게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그 분의 품 안에서 일치의 행복을 누리게 되는 길고긴 여정이라는 말씀..
마음에 담고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