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청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데
한 경찰이 점심 먹고 오는 젊은 중년에게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인사를 받지도 않고 그저 얘기하며 지나치는 것입니다.
나이를 더 먹은 자기가 인사를 하는데도
자기보다 젊은 사람이 인사를 안 받으니까
그 경찰은 겸연쩍은 웃음을 웃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젊은 중년이 아주 높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는 인사를 하고 누구는 인사를 해도 받지 않고.
누구는 높은 사람이 되고 누구는 내내 평범한 사람이 되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이 세상에 불공평한 것이 한 둘인가요?
같은 인간인데
누구는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고
누구는 보통 사람의 아버지가 됩니다.
저는 일찍부터 중요한 책임을 많이 맡았습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관구 봉사자가 되었지요.
같은 나이의 다른 형제들이 아직도 공부하고 있을 때
저는 관구 봉사자가 되어 그 무거운 책임을 맡았습니다.
하루는 너무 큰 문제가 생겨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는데
별거 아닌 것으로 힘든 형제가 자기 어려움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저에게 지청구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보다 나이도 더 먹은 분이었습니다.
너무 한심스럽기도 하고 너무 고독하기도 하여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탄조로 혼자 토로했습니다.
같은 형제인데 누구는 힘들면 힘들다고 엄살 부려도 되고
누구는 이런 책임을 맡아 힘들어도
다른 형제의 짐까지 짊어져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는 것, 이것 어떤 것인가요?
자랑스럽고 신나는 일인가요, 무거운 책임을 떠맡는 것인가요?
요셉도 말 못할 어려움과 외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아비가 되었는지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는 답답함.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키워내야 하는 책임의 무거움.
복음을 보면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될 사람으로
요셉을 의롭게 태어나게 하셨겠지만
그리스도의 아버지 됨이 요셉을 의롭게 만들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 무거운 책임을 맡으라고 했을 때 싫다고 하지 않은 것,
저는 이것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그 “Fiat"과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식을 임신한 것도 아닌 마리아의 임신을
마다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고 받아들인 것도 대단하지만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아들을 하느님의 아들로 키워내야 한다는 것,
이것을 받아들인 것이 더 대단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임신을 받아들인 것은
한 번 과거를 받아들이고 나면 그만인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키워내는 것은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책임은 요셉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도 나에게 맡겨진 자녀를 하느님의 아들로 키워야 하고,
나에게 맡겨진 형제를 그리스도로 대하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책임을 의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책임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완수한다면
의로움에 사랑으로 더 완전하고 더 아름답겠지요?
요셉도 아마 그러했을 것입니다.
한 경찰이 점심 먹고 오는 젊은 중년에게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인사를 받지도 않고 그저 얘기하며 지나치는 것입니다.
나이를 더 먹은 자기가 인사를 하는데도
자기보다 젊은 사람이 인사를 안 받으니까
그 경찰은 겸연쩍은 웃음을 웃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젊은 중년이 아주 높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는 인사를 하고 누구는 인사를 해도 받지 않고.
누구는 높은 사람이 되고 누구는 내내 평범한 사람이 되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이 세상에 불공평한 것이 한 둘인가요?
같은 인간인데
누구는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고
누구는 보통 사람의 아버지가 됩니다.
저는 일찍부터 중요한 책임을 많이 맡았습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관구 봉사자가 되었지요.
같은 나이의 다른 형제들이 아직도 공부하고 있을 때
저는 관구 봉사자가 되어 그 무거운 책임을 맡았습니다.
하루는 너무 큰 문제가 생겨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는데
별거 아닌 것으로 힘든 형제가 자기 어려움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저에게 지청구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보다 나이도 더 먹은 분이었습니다.
너무 한심스럽기도 하고 너무 고독하기도 하여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탄조로 혼자 토로했습니다.
같은 형제인데 누구는 힘들면 힘들다고 엄살 부려도 되고
누구는 이런 책임을 맡아 힘들어도
다른 형제의 짐까지 짊어져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는 것, 이것 어떤 것인가요?
자랑스럽고 신나는 일인가요, 무거운 책임을 떠맡는 것인가요?
요셉도 말 못할 어려움과 외로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아비가 되었는지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는 답답함.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키워내야 하는 책임의 무거움.
복음을 보면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될 사람으로
요셉을 의롭게 태어나게 하셨겠지만
그리스도의 아버지 됨이 요셉을 의롭게 만들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 무거운 책임을 맡으라고 했을 때 싫다고 하지 않은 것,
저는 이것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그 “Fiat"과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식을 임신한 것도 아닌 마리아의 임신을
마다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고 받아들인 것도 대단하지만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아들을 하느님의 아들로 키워내야 한다는 것,
이것을 받아들인 것이 더 대단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임신을 받아들인 것은
한 번 과거를 받아들이고 나면 그만인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키워내는 것은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책임은 요셉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도 나에게 맡겨진 자녀를 하느님의 아들로 키워야 하고,
나에게 맡겨진 형제를 그리스도로 대하고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책임을 의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책임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완수한다면
의로움에 사랑으로 더 완전하고 더 아름답겠지요?
요셉도 아마 그러했을 것입니다.
스스로는 부족하지만 상대가 믿어주는 그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발돋움 하게 되고,
때로는 나눌 수 없는 고독이 있지만 그 고독을 견디며
성숙하게 되는 거 아닌가, 제 작은 경험으로 조금 알아듣게 되네요.
성인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존경이 가고
그런 요셉 성인의 본명을 지니게 된 것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