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온 누리에 평화를...
늘 겨울 옷을 누덕누덕 걸치고, 나의 행로에서 서성거리는 그 모습은 대할 때마다 그 유명한 이태리의 거지 성자, 분도 라브로를 상기하게끔 한다.
물론 가끔 대하는 이 행려자는 정신적으로 온전한 사람의 삶은 아니지만, 라브로 성인은 오로지 하느님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스스로 깊게 체득하려, 처음엔 수도원 문을 두드렸지만, 지나친 열심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성소 판정을 받아 그 생활을 포기하고는, 일생을 거지로서 이태리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온갖 고난의 삶을 살았던 분이다.
성인이 어쩌다 어느 성당에 들러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조배라도 할라치면, 신자들은 그 꽤재재하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거지 행색에, 성인과의 가까운 자리를 피하기가 일쑤였단다. 또 거리를 가다가 노닐고 있는 동네 아이들이라도 마주치면, 영락없는 거지꼴에 침을 뱉거나 놀림을 당했으니,그런 상황에 그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오히려 웃으면서 감사드렸다니...!
암튼 내가 자주 대하는 그 행려자가 평소에 하릴없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더니, 오늘은 대로변 한 귀퉁이에서 곤하게 잠에 빠져있다.
"아하, 주님, 성서의 말씀대로라면, 이 행려자야말로 직천당에 가야 할 거지 성자 분도 나자로와 같은 분이 아닐런가?" 이런 묵상을 하며, "예수, 마리아여, 당신을 사랑하오니 이 행려자의 영혼을 따뜻이 돌보소서!"라는 맹랑한 기도를 올리게 되는 거다.
겉으로 보이는 각 사람의 행각은 아무도 판단할 수가 없다. 이 행려자 아저씨도 어느 가정에서 태어날 적에 남부럽지않은 귀한 아들 대접을 받고 자랐으리라.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사회적 구조에 의해 내몰림을 당한 약자임에 틀림없고, 가여운 처지로 저렇듯 행려자의 신세로 지내는 것이 아닌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상황에서도, 연민의 눈과 마음을 모두어 기도드려야 할 때가 참으로 많다.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