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이나 고통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고통을 함께 나누면 고통이 반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두 배가 된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고통을 나누는 것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는 사랑을 나누고 증대시키기 위해 함께 나누는 것이 될 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이건 기쁨이건 나누는 것은 나의 고통이 줄어들거나 기쁨이 증대되는,
어쩌면 이기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랑하기에 나누는 것이고,
사랑을 나누다보니 사랑이 증대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기쁨은 증대되고
고통이 줄어드는 부수적인 결과도 낳게 되는 것이어야 좋지 않겠습니까?
오늘 주님 십자가 밑에 함께 계신 분들은 사랑 아닌 다른 목적이 없었지요.
반면 십자가 길에서 도망친 제자들은 사랑 아닌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같이 죽게 되고 같이 고통을 받게 될 때엔 함께 할 수 없었지요.
이유와 목적이 사랑인 분들과
이유와 목적이 자기 만족과 성취인 사람의 차이입니다.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를 세운 마리 드 라 빠시옹이
우리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했듯이
성인들은 사랑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었고 성공은 물론
내 고통과 슬픔을 줄이기 위해 고통과 슬픔을 나누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십, 몇백 번 성모송을 바치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마리아가 여인중에 복되시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계시는 것은 말 그대로
주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리아가 고통 중에서도 주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요,
주님의 Passio(수난)에 마리아가 Compassio(동병상련)했기 때문임도
묵상하는 오늘 성모 통고 축일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마음에 새기다)
http://www.ofmkorea.org/147805
17년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주님 곁에는 늘 어머니가)
http://www.ofmkorea.org/111263
15년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아드님과 함께, 우리와 함께)
http://www.ofmkorea.org/82546
14년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성모 마리아와 같은 공감 능력을.)
http://www.ofmkorea.org/65312
12년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어머니처럼만 하면)
http://www.ofmkorea.org/39125
11년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동고동락)
http://www.ofmkorea.org/5282
10년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고통에 강해지려면)
http://www.ofmkorea.org/4373
08년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사랑의 키 낮춤)
http://www.ofmkorea.org/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