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필리비서 말씀은 매우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말씀이 많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차고 적극적이고 멋집니까?
제가 이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는 저의 성향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일은 금방 잊어버리거나 다 잊어버리고,
너무 앞만 보고 달린다고 걱정을 들을 정도로 앞을 보고 달립니다.
그제는 북한 일을 같이 하는 형제에게 새로운 계획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형제 왈 “음악회나 끝나고 얘기합시다.”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창 음악회를 추진하고 있는데
저에게는 벌써 또 다른 목표가 생겼으니 말입니다.
저에게는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제 옆의 사람들에게는 현재의 일도 버겁습니다.
그러니 옆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앞을 향해 내달린다는 오늘의 말씀도
옆도 보지 않고 달린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달린다는 것이고
뒤에 있는 것을 잊는다 함은 과거를 교훈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머물거나 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과거에 머물거나 매여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실제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과거에 머물거나 매입니까?
나이 많이 드신 분들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살지요.
좋은 추억은 사랑이기도 하여 아름답기도 하지만
아무 할 일이 없어서 과거를 되씹는 것이라면
애처롭기도 하고 어떤 경우 추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과거에 머물거나 매입니까?
죄를 용서받지도 죄를 용서하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죄든 남의 죄든 마찬가지입니다.
죄란 과거입니다.
과거 중에서도 안 좋은 과거이지요.
왜 안 좋은 것에 머뭅니까?
안 좋은 과거에 머물 필요가 없는데도 머무는 것을 보니
죄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매이는 것입니다.
본당에 있을 때 아주 자주 고백성사를 보는 분이 계셨습니다.
옛날 지었던 죄 중에서
미처 고백하지 못했던 작은 죄를 찾아내 고백하시곤 했습니다.
자주 고백성사를 보고 작은 죄도 찾아내 고백을 하니
고백성사의 모범인 듯도 하지만
이것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보지 않고 죄만 보는 것이라면
하느님 원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과거의 죄에 매이는 것이라면
하느님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을 옛날에 하였다면
이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늘을 충실히 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고,
그러나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간음한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이 많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차고 적극적이고 멋집니까?
제가 이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는 저의 성향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일은 금방 잊어버리거나 다 잊어버리고,
너무 앞만 보고 달린다고 걱정을 들을 정도로 앞을 보고 달립니다.
그제는 북한 일을 같이 하는 형제에게 새로운 계획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형제 왈 “음악회나 끝나고 얘기합시다.”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창 음악회를 추진하고 있는데
저에게는 벌써 또 다른 목표가 생겼으니 말입니다.
저에게는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제 옆의 사람들에게는 현재의 일도 버겁습니다.
그러니 옆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앞을 향해 내달린다는 오늘의 말씀도
옆도 보지 않고 달린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달린다는 것이고
뒤에 있는 것을 잊는다 함은 과거를 교훈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머물거나 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과거에 머물거나 매여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실제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과거에 머물거나 매입니까?
나이 많이 드신 분들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살지요.
좋은 추억은 사랑이기도 하여 아름답기도 하지만
아무 할 일이 없어서 과거를 되씹는 것이라면
애처롭기도 하고 어떤 경우 추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과거에 머물거나 매입니까?
죄를 용서받지도 죄를 용서하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죄든 남의 죄든 마찬가지입니다.
죄란 과거입니다.
과거 중에서도 안 좋은 과거이지요.
왜 안 좋은 것에 머뭅니까?
안 좋은 과거에 머물 필요가 없는데도 머무는 것을 보니
죄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매이는 것입니다.
본당에 있을 때 아주 자주 고백성사를 보는 분이 계셨습니다.
옛날 지었던 죄 중에서
미처 고백하지 못했던 작은 죄를 찾아내 고백하시곤 했습니다.
자주 고백성사를 보고 작은 죄도 찾아내 고백을 하니
고백성사의 모범인 듯도 하지만
이것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보지 않고 죄만 보는 것이라면
하느님 원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과거의 죄에 매이는 것이라면
하느님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을 옛날에 하였다면
이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늘을 충실히 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고,
그러나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간음한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은 또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요.
오늘이 쌓여서 나의 인생이 될 것 입니다.
아멘아멘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