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 하시고
당신을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성생활을 하다보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을 멈추는 때가 옵니다.
빛이신 하느님 앞에서 나의 죄상이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빛에 나의 죄가 다 드러날 때
숨김없이 드러난 죄를 보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입니다.
이는 마치 어둠 속에 있을 때는 그 죄가 보이지 않아 좋았는데
빛에로 가까이 나아가면 갈수록 나의 작은 죄와 허물까지
모두 드러나 숨길 수 없게 되어
그것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롭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빛에로 나아가는 것을 머추고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프란치스칸이면서
프란치스코를 보는 것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숫제 프란치스코와 영성이 비슷한 점이 많은
소화 데레사의 글이나 삶은 보아도 프란치스코는 보지 않습니다.
데레사는 내가 꼭 따르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라고 하는 프란치스코는
내가 꼭 따라야 할 삶이고 영성이기에 그의 삶과 영성은 보면 볼수록
너무도 프란치스코와 다른 나의 삶을 찔러 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빛은 죄의 어둠을 들추기도 하지만 어둠을 밝히기도 합니다.
교만으로 나의 죄만을 보면 죄의 어둠이 드러나는 고통이지만
겸손으로 나의 죄 인정하고 은총에 맡기면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하느님의 사랑이 나의 죄의 어둠을 없애줍니다.
이는 마치 세탁기에 빨래를 담그듯이
우리의 죄를 은총에 담가 사랑으로 빨래하는 것입니다.
이때 죄의 용서가 체험되어지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죄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봅니다.
당신을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성생활을 하다보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을 멈추는 때가 옵니다.
빛이신 하느님 앞에서 나의 죄상이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빛에 나의 죄가 다 드러날 때
숨김없이 드러난 죄를 보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입니다.
이는 마치 어둠 속에 있을 때는 그 죄가 보이지 않아 좋았는데
빛에로 가까이 나아가면 갈수록 나의 작은 죄와 허물까지
모두 드러나 숨길 수 없게 되어
그것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롭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빛에로 나아가는 것을 머추고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프란치스칸이면서
프란치스코를 보는 것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숫제 프란치스코와 영성이 비슷한 점이 많은
소화 데레사의 글이나 삶은 보아도 프란치스코는 보지 않습니다.
데레사는 내가 꼭 따르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라고 하는 프란치스코는
내가 꼭 따라야 할 삶이고 영성이기에 그의 삶과 영성은 보면 볼수록
너무도 프란치스코와 다른 나의 삶을 찔러 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빛은 죄의 어둠을 들추기도 하지만 어둠을 밝히기도 합니다.
교만으로 나의 죄만을 보면 죄의 어둠이 드러나는 고통이지만
겸손으로 나의 죄 인정하고 은총에 맡기면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하느님의 사랑이 나의 죄의 어둠을 없애줍니다.
이는 마치 세탁기에 빨래를 담그듯이
우리의 죄를 은총에 담가 사랑으로 빨래하는 것입니다.
이때 죄의 용서가 체험되어지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죄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봅니다.
이 복음을 대할 때마다 인생길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죄도 은총으로 바뀔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만남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나의 부적절함이 상대의 덕의 그늘이 품어 빛을 보게 하는
은총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람의 부적적한 태도를
덕의 그늘로 품어 빛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줄 때,
마음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존재의미를 느끼는 뿌듯함으로
세상을 달리 보게 되고, 그래서 만남은 은총이다 싶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문제겠지만요,
성경을 보면 하나같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만이
인생이 바뀌었더군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라는 복음 삼덕도 관계를 통해
진정으로 경험 될 때만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관념을 벗어나
내면의 영광송이 된다 싶습니다.
오늘 복음은 죄지을 수밖에 없는 저에게
또다시 출구를 열어주시는 어머니의 가이없는 사랑을 느끼게 되네요.
허구한 날 새벽을 일찍 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존경을 보내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