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주님을 따름과 관련한 가르침입니다.
오늘 복음엔 주님을 따름과 관련하여 세 가지 예가 나오는데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의 얘기 중에 <먼저>라는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이렇게 단호합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그러니까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먼저 할 것을 얘기하는데
주님은 그들이 먼저 하겠다고 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먼저 해야 할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 되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 주님을 따를 것인데
그 전에 정리해야 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입니다.
이런 것이 결코 나쁜 것이거나 비신앙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엘리사가 엘리야의 제자될 때의 얘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를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엘리사가 청하자 엘리야는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고 답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먼저 하고자 한 것을 주님께서 그렇게 단호하게
허락지 않으신 것은 그것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이거나 비신앙적인
것이어서가 아닌데 그렇다면 그것은 뭣 때문입니까?
주님을 따름은 다른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우선적인 것임을,
주님을 따르고자 할 때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고려하지도
생각하지도 말아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이유 그러니까 따름의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함보다
더 큰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따름의 즉각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하였다면 그 따름은 즉각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꼭 그렇게 즉시 따라야 하는지,
언제라도 따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지요.
그래서 가능한 한 늦게 세례를 받으려고 하고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경우 가능한 한 늦게 입회하려고 하고,
수도원 입회자의 경우 일찍 입회한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일 임금님이 가자고 하면 즉각 따르지 않겠습니까?
아니, 임금님보다 더 소중한 분 그러니까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분이 가자고 하면 즉각 따르겠지요.
미룰 이유가 없습니다.
뒤를 돌아볼 이유도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따르라고 하시고,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 따르라고 하십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따르라고 애걸하지 않으시고
행복하고 싶다면 당신 말씀대로 즉각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매우 고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주님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계시는 거지요.
강요치 않고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시는 주님 사랑에 감사하는 우리입니다.
한가위에 복 많이받으시고
건강하시고
공동체가 두루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더 고통 받아도 억울하지 않아야)
http://www.ofmkorea.org/153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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