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밤은 점점 깊어갑니다.
배반의 밤이 깊어 가면 영광의 날은 밝아온다는 것이
어제와 오늘의 묵상 주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어제 복음의 묵상을 이어갑니다.
어제 저는 일은 虛事로 끝나도 사랑은 그것이 사랑인 한
실패도 없고 허사가 되는 일도 없다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아주 독종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체구도 작고 힘도 없었지만
누구한테 맞으면 끝까지 덤빕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코피 나면 졌다고 생각하고 우는데
이 친구는 코피가 나도 울지 않고,
그 피를 쓱 씻어 자기 몸에 바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코를 풀어 코피를 나게 한 친구에게
그 피를 뿌리면서 끝까지 덤빕니다.
코피 났다고 해서 졌다고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는 기가 질려 졌다고 오히려 항복을 합니다.
이 친구한테 제가 배운 것은
코피 난 것이 진 것이 아니라
졌다고 생각한 것이 진 것이고
졌다고 생각하고 싸움을 멈춘 것이 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빛은 지는 법이 없습니다.
빛이 어둠을 밝히지 못했다고 집니까?
빛이 없는 것이 어둠이니 빛은 절대로 어둠에 질 수 없고
빛이 진다면 빛을 비추기를 멈출 때만 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배반당한다고 사랑이 실패하고 허사가 됩니까?
사랑이 실패한 것은 배반으로 사랑이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이고
사랑이 실패했다고 사랑하는 것을 멈출 때뿐입니다.
아무리 유다가 주님 사랑에 배반을 하고 다른 제자들이 배반해도
주님은 그 배반으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랑이 멈추지 않는 한 사랑은 승리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어떠했습니까?
유다도 한 때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유다와 베드로 둘 다 배반했지만
베드로는 다시 사랑하기로 하여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지만
유다는 한 번의 배반으로 자기의 사랑은 실패로 끝났다고 결론짓고
다시 사랑하기를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자기의 배반으로
주님의 사랑은 자기에게서 끝났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자살한 것이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 사랑에 배반치 않는 사람이 있나요?
그대로 주님 사랑은 우리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배반의 밤이 깊어 가면 영광의 날은 밝아온다는 것이
어제와 오늘의 묵상 주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어제 복음의 묵상을 이어갑니다.
어제 저는 일은 虛事로 끝나도 사랑은 그것이 사랑인 한
실패도 없고 허사가 되는 일도 없다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아주 독종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체구도 작고 힘도 없었지만
누구한테 맞으면 끝까지 덤빕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코피 나면 졌다고 생각하고 우는데
이 친구는 코피가 나도 울지 않고,
그 피를 쓱 씻어 자기 몸에 바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코를 풀어 코피를 나게 한 친구에게
그 피를 뿌리면서 끝까지 덤빕니다.
코피 났다고 해서 졌다고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는 기가 질려 졌다고 오히려 항복을 합니다.
이 친구한테 제가 배운 것은
코피 난 것이 진 것이 아니라
졌다고 생각한 것이 진 것이고
졌다고 생각하고 싸움을 멈춘 것이 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빛은 지는 법이 없습니다.
빛이 어둠을 밝히지 못했다고 집니까?
빛이 없는 것이 어둠이니 빛은 절대로 어둠에 질 수 없고
빛이 진다면 빛을 비추기를 멈출 때만 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배반당한다고 사랑이 실패하고 허사가 됩니까?
사랑이 실패한 것은 배반으로 사랑이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이고
사랑이 실패했다고 사랑하는 것을 멈출 때뿐입니다.
아무리 유다가 주님 사랑에 배반을 하고 다른 제자들이 배반해도
주님은 그 배반으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랑이 멈추지 않는 한 사랑은 승리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어떠했습니까?
유다도 한 때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유다와 베드로 둘 다 배반했지만
베드로는 다시 사랑하기로 하여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지만
유다는 한 번의 배반으로 자기의 사랑은 실패로 끝났다고 결론짓고
다시 사랑하기를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자기의 배반으로
주님의 사랑은 자기에게서 끝났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자살한 것이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 사랑에 배반치 않는 사람이 있나요?
그대로 주님 사랑은 우리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추적추적 비는 오고 바람은 불고
날은 춥고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회개의 의미를 떠올린 기억이 있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고,
그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연민의 눈길에서
베드로는 과거를 묻지 않을 것이라는,
깊은 사랑을 읽었고
유다는 그렇지 못한 것이라 생각되네요.
누군가가 나에게서 떠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이 들도록
연민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 하고.
역으로,
비록 다시 돌아갈 염치는 없지만
다시 돌아가면 받아 줄 것이라는
상대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이고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하느님 사랑에 배반치 않는 사람이 있나요?
그대로 주님 사랑은 우리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