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 당신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날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더러움이 없었다면
당신의 씻어주심의 은혜를 어찌 입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많이 내렸고,
아오스딩 성인의 말대로
저희의 더러움은 당신의 은혜를 입게 하는 참으로 복된 탓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베드로 사도처럼 저의 더러움이 씻기기를 주저합니다.
저의 죄하고만 만나고 당신의 사랑과는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저는 당신께만 죄를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저도 제 죄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더러움을 못 본체, 더러움이 문제없는 양 살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당신은 오늘 더럽다고 저희가 발을 내밀지 않는다면
당신과 저희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모습을 감추려고 당신을 피해 숨었고
그 바람에 당신을 뵐 수 없었지요.
우리는 가끔 어줍지 않게 깨끗한 곳만 보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더럽지 않은 적이 언제 있었고
더럽지 않은 구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더러운 것을 감추고서는 당신을 만날 수 없고
당신이 씻어주시는 은총과 사랑을 체험할 수 없나이다.
하여 염치불구하고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믿으며
더러운 저의 발을 내미오니 저의 더러움을 씻어주소서.
먼저 저의 위선의 더러움을 씻어주소서.
저의 선이라는 것은 똥을 덮어 놓은 신문지와 같은 것입니다.
하오니 저의 위선을 까발리어 저의 더러움이 환히 드러나게 하소서.
신문지를 젖히면 똥이 드러나듯
당신이 그렇게 저의 위선을 까발리시면
저의 인자한 얼굴과 다정한 미소 뒤에 숨어있는 증오가 드러납니다.
당신 십자가 위의 그 용서로 이 증오를 허무소서.
다음으로 저의 말끔한 옷 속에 숨어있는 저의 탐욕이 드러납니다.
당신 십자가 위의 그 벌거벗음으로 저를 부끄럽게 하소서.
다음으로 저의 열정과 헌신 뒤에 숨어있는
저의 고집과 성취욕이 드러납니다.
겟세마니에서 당신이 하신 그 Fiat과 Amen으로 저를 무너뜨리소서.
다음으로 저의 선행 뒤에 숨어있는 저의 이기주의가 드러납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쏟으신 당신의 피와 물로 저를 씻으소서.
그리고 이제 저를 씻어주신 당신처럼 저도 씻어주는 자 되게 하소서.
그러나 당신과는 다르게
미안한 마음으로 제가 형제들의 더러움을 씻게 하소서.
당신이 아름답게 내시고 가꾸신 형제들을 저는 더럽혔습니다.
저의 부질없는 세 치 혀로 형제를 나쁘게 얘기함으로 더럽혔습니다.
저 개인의 잘못된 처신으로
공동체 형제들의 명예를 도매금으로 떨어트렸습니다.
하여 저로 인해 더렵혀진 형제에 대한 미안함과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제 형제의 발을 씻겠습니다.
겸손으로 씻게 하소서.
사실 제가 남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어쩌면 제가 더 더러운데 제가 누구를 씻어준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제가 형제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너의 더러움을 내가 씻어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형제를 받들어 섬기겠다는 뜻입니다.
제가 더 큰 죄인인데도 지금까지 업신여기고 무시한 형제를
이제 한껏 낮추어진 저로서 받들어 섬기겠습니다.
사랑으로 씻게 하소서.
코와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아기의 그 코를
더럽다 하지 않고 닦아주는 엄마처럼 씻어주고 싶습니다.
아기의 똥마저 향기롭게 여기는 엄마의 사랑이라면
냄새난다고 아기를 밀치고 꾀죄죄하다고 아기를 내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저는 참으로 좋은 것만 좋아했습니다.
징징거리는 사람은 싫었습니다.
앙알대는 사람도 싫었습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도 싫었습니다.
부담스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싫었습니다.
우중충한 사람도 싫었습니다.
분위기가 무거운 사람도 싫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일부러 찾아다니던 사람들이었는데
나이를 먹어 기력이 떨어지니 점점 이런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저도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저도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저도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제가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남은 닦아주고
자기는 걸레가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의 사랑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다른 곳은 깨끗하게 하고
자기는 쓰레기통이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의 사랑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당신의 사랑만이 싫어하는 것을 기꺼이 하게하고
당신의 사랑만이 힘든 것을 가볍게 하게하고
당신의 사랑만이 어두움을 밝혀 환하게 하고
당신의 사랑만이 아픔을 성장통이 되게 하오니,
주님, 당신이 오늘 제자들에게 주셨던 살과 피의 사랑을
저희에게도 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흘리셨던 물과 피의 사랑을 저희에게 주소서.
하여 저희가 기꺼이 남을 씻어주는 물이 되고
다른 사람을 먹이는 음식이 되리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더러움이 없었다면
당신의 씻어주심의 은혜를 어찌 입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많이 내렸고,
아오스딩 성인의 말대로
저희의 더러움은 당신의 은혜를 입게 하는 참으로 복된 탓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베드로 사도처럼 저의 더러움이 씻기기를 주저합니다.
저의 죄하고만 만나고 당신의 사랑과는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저는 당신께만 죄를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저도 제 죄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더러움을 못 본체, 더러움이 문제없는 양 살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당신은 오늘 더럽다고 저희가 발을 내밀지 않는다면
당신과 저희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모습을 감추려고 당신을 피해 숨었고
그 바람에 당신을 뵐 수 없었지요.
우리는 가끔 어줍지 않게 깨끗한 곳만 보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더럽지 않은 적이 언제 있었고
더럽지 않은 구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더러운 것을 감추고서는 당신을 만날 수 없고
당신이 씻어주시는 은총과 사랑을 체험할 수 없나이다.
하여 염치불구하고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믿으며
더러운 저의 발을 내미오니 저의 더러움을 씻어주소서.
먼저 저의 위선의 더러움을 씻어주소서.
저의 선이라는 것은 똥을 덮어 놓은 신문지와 같은 것입니다.
하오니 저의 위선을 까발리어 저의 더러움이 환히 드러나게 하소서.
신문지를 젖히면 똥이 드러나듯
당신이 그렇게 저의 위선을 까발리시면
저의 인자한 얼굴과 다정한 미소 뒤에 숨어있는 증오가 드러납니다.
당신 십자가 위의 그 용서로 이 증오를 허무소서.
다음으로 저의 말끔한 옷 속에 숨어있는 저의 탐욕이 드러납니다.
당신 십자가 위의 그 벌거벗음으로 저를 부끄럽게 하소서.
다음으로 저의 열정과 헌신 뒤에 숨어있는
저의 고집과 성취욕이 드러납니다.
겟세마니에서 당신이 하신 그 Fiat과 Amen으로 저를 무너뜨리소서.
다음으로 저의 선행 뒤에 숨어있는 저의 이기주의가 드러납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쏟으신 당신의 피와 물로 저를 씻으소서.
그리고 이제 저를 씻어주신 당신처럼 저도 씻어주는 자 되게 하소서.
그러나 당신과는 다르게
미안한 마음으로 제가 형제들의 더러움을 씻게 하소서.
당신이 아름답게 내시고 가꾸신 형제들을 저는 더럽혔습니다.
저의 부질없는 세 치 혀로 형제를 나쁘게 얘기함으로 더럽혔습니다.
저 개인의 잘못된 처신으로
공동체 형제들의 명예를 도매금으로 떨어트렸습니다.
하여 저로 인해 더렵혀진 형제에 대한 미안함과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제 형제의 발을 씻겠습니다.
겸손으로 씻게 하소서.
사실 제가 남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어쩌면 제가 더 더러운데 제가 누구를 씻어준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제가 형제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너의 더러움을 내가 씻어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형제를 받들어 섬기겠다는 뜻입니다.
제가 더 큰 죄인인데도 지금까지 업신여기고 무시한 형제를
이제 한껏 낮추어진 저로서 받들어 섬기겠습니다.
사랑으로 씻게 하소서.
코와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아기의 그 코를
더럽다 하지 않고 닦아주는 엄마처럼 씻어주고 싶습니다.
아기의 똥마저 향기롭게 여기는 엄마의 사랑이라면
냄새난다고 아기를 밀치고 꾀죄죄하다고 아기를 내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저는 참으로 좋은 것만 좋아했습니다.
징징거리는 사람은 싫었습니다.
앙알대는 사람도 싫었습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도 싫었습니다.
부담스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싫었습니다.
우중충한 사람도 싫었습니다.
분위기가 무거운 사람도 싫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일부러 찾아다니던 사람들이었는데
나이를 먹어 기력이 떨어지니 점점 이런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저도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저도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저도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제가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남은 닦아주고
자기는 걸레가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의 사랑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다른 곳은 깨끗하게 하고
자기는 쓰레기통이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의 사랑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당신의 사랑만이 싫어하는 것을 기꺼이 하게하고
당신의 사랑만이 힘든 것을 가볍게 하게하고
당신의 사랑만이 어두움을 밝혀 환하게 하고
당신의 사랑만이 아픔을 성장통이 되게 하오니,
주님, 당신이 오늘 제자들에게 주셨던 살과 피의 사랑을
저희에게도 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흘리셨던 물과 피의 사랑을 저희에게 주소서.
하여 저희가 기꺼이 남을 씻어주는 물이 되고
다른 사람을 먹이는 음식이 되리이다.
'사랑 깊은 펠리칸, 주 예수님 !
더러운 저 , 당신 피로 씻어 주소서.'
숙연한 마음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주님 사랑 까닭으로 , 주님 사랑 때문에
죄악에서, 유혹에서 벗어 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