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하고 전하여라.”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하신 요한복음 20장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을 더 이상 붙들지 않는 것이고,
해야 할 것은 이웃에게 주님 부활을 전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 주님을 더 이상 붙들지 않는 것.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아직 올라가지 않았으니 붙잡지 말라고 하시는데
붙잡으면 올라가지 못하기에 붙잡지 말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살아있을 때와 다른 몸이니
만지지 말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주님한테 매달리지 말고 제자들에게 가라는 뜻인가요?
200주년 성서에서는 만지지 말라고 번역하고 있고
옛날 공동번역이나 이번 새 번역에서는 붙잡지 말라고 번역합니다.
영어 Jerusalem 성서의 번역은 “Do not cling to me.”라고 하고
또 다른 번역은 “Do not hold on to me”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문맥상이나 이런 번역들을 놓고 볼 때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머물러있거나 집착하지 말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빨리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마리아는 주님을 가장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사람도 마리아입니다.
돌아가셨지만 그냥 잊어버리거나 체념할 수 없는 마리아입니다.
빈 무덤을 확인하고 남자들은 체념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마리아는 그래서 계속 주님을 찾습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주님께서는 당신 부활의 첫 모습을 보이십니다.
당연히 마리아는 너무 기뻤고, 기쁜 나머지 주님께 달려듭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주님께서는 다소 차갑게 들릴 수도 있는
“붙들지 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께로 올라가셔야 하는 주님을 “붙잡지 마라”는 뜻보다는
당신께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 발치에만 머물지 말고
사람들에게 가서 부활의 기쁨을 전하고 같이 나누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가장 사랑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부활의 첫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더 사랑할수록 더 빨리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주님을 사랑하면 무엇보다도 주님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사명도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은 당신에게서 떠나 사람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물론 떠난다는 것은 주님과 영영 이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사랑의 만족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 사랑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더 이상 붙들지 말고 제자들에게 가서,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사랑의 머물음에 집착하지 말고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이 누구보다 절실히 필요한 사람,
아니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그들에게 미안해야 하고
그래서 그들에게 달려가야 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하고 전하여라.”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하신 요한복음 20장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을 더 이상 붙들지 않는 것이고,
해야 할 것은 이웃에게 주님 부활을 전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 주님을 더 이상 붙들지 않는 것.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아직 올라가지 않았으니 붙잡지 말라고 하시는데
붙잡으면 올라가지 못하기에 붙잡지 말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살아있을 때와 다른 몸이니
만지지 말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주님한테 매달리지 말고 제자들에게 가라는 뜻인가요?
200주년 성서에서는 만지지 말라고 번역하고 있고
옛날 공동번역이나 이번 새 번역에서는 붙잡지 말라고 번역합니다.
영어 Jerusalem 성서의 번역은 “Do not cling to me.”라고 하고
또 다른 번역은 “Do not hold on to me”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문맥상이나 이런 번역들을 놓고 볼 때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머물러있거나 집착하지 말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빨리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마리아는 주님을 가장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사람도 마리아입니다.
돌아가셨지만 그냥 잊어버리거나 체념할 수 없는 마리아입니다.
빈 무덤을 확인하고 남자들은 체념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마리아는 그래서 계속 주님을 찾습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주님께서는 당신 부활의 첫 모습을 보이십니다.
당연히 마리아는 너무 기뻤고, 기쁜 나머지 주님께 달려듭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주님께서는 다소 차갑게 들릴 수도 있는
“붙들지 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께로 올라가셔야 하는 주님을 “붙잡지 마라”는 뜻보다는
당신께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 발치에만 머물지 말고
사람들에게 가서 부활의 기쁨을 전하고 같이 나누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가장 사랑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부활의 첫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더 사랑할수록 더 빨리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주님을 사랑하면 무엇보다도 주님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사명도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은 당신에게서 떠나 사람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물론 떠난다는 것은 주님과 영영 이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사랑의 만족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 사랑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더 이상 붙들지 말고 제자들에게 가서,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사랑의 머물음에 집착하지 말고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이 누구보다 절실히 필요한 사람,
아니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그들에게 미안해야 하고
그래서 그들에게 달려가야 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마니또님이 슬픔을 딛고 찬연한 부활의 빛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나누는 사랑의 기쁨 인가 봅니다.
이별의 아픔이 있으셨군요.
그러나 이별은 또 다른 만남,
다시는 이별이 없는 만남을 의미하지요.
마니또님이 “쥬라블 로제로 수사님! 요셉님!
뭉게구름님! 웃지요님! 오수록수사님! 릿다님!
그리고 신부님 강론방의 이름 모르는 벗님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주시니,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에 나오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우리 모두는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라는 시가 떠오르며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기쁜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신부님 강론방의 이름모르는 벗님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날마다 찬란한 부활을 사시기를 기도할께요..^^
시아버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친정아버지 10주기를 맞아 더욱 슬펐어요.
하얀 목련꽃을 그리도 좋아하셨는데.. 친정 아버지 빈소 곁에
하얗게 피어난 목련나무를 보며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아버님께서는 90수를 누리셨으니 天壽를 누리셨다고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나 허전하네요..
결혼하고 25년동안 저에게 한없는 믿음과 사랑을 부어 주셨거든요.
Burn out 인지.. 무기력증인지.. 타고남은 재처럼 기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붙들거나 머물려 집착하기보다는 그 분이
진정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저의 사랑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사랑하는 방법이니깐요..ㅎㅎㅎ
사랑의 머물음에 집착하지 말고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이
누구보다 절실히 필요한 사람,
아니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그들에게 미안해야 하고
그래서 그들에게 달려가야 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주님부활로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고,
저보다 부활소식이 더 필요한 사람을 기억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