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
죽은 사람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생명을 구가하는 행복한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저는 오늘 딱 이 말 한 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다른 얘기를 더 하면 구질구질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 마디 더 하라고 하면
행복해져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용서의 반대말이 앙갚음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앙갚음은 누구의 무엇 때문에 자기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하기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지만
누구의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것이라면 그 불행감으로 인해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앙갚음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와 상관없이 행복하게 되면
앙갚음할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내가 그에게서 해방되면서 나도 그를 용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부활의 삶은 주님의 당부대로 용서를 할 때 완성될 것입니다.
부활을 체험한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한 사람만이 부활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생명을 구가하는 행복한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저는 오늘 딱 이 말 한 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다른 얘기를 더 하면 구질구질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 마디 더 하라고 하면
행복해져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용서의 반대말이 앙갚음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앙갚음은 누구의 무엇 때문에 자기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하기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지만
누구의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것이라면 그 불행감으로 인해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앙갚음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와 상관없이 행복하게 되면
앙갚음할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내가 그에게서 해방되면서 나도 그를 용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부활의 삶은 주님의 당부대로 용서를 할 때 완성될 것입니다.
부활을 체험한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한 사람만이 부활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용서는 됐는 데 아직 미움이 남아 있는 것은
아직 용서가 되지 않은 것 이겠지요 !
이 미움 마저 지워 버려야 하는 데
나의 노력으로 힘이 많이 듭니다.
상대를 용서해야 한다고 마음먹는 것은
저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지요.
인간적인 감정으로는
‘그래, 너 없으면 사람 없냐!“라는
오기로 버티고 싶지만 그런 마음으로는 기도할 수 없기에
결국 상대를 용서할 수밖에 없더군요.
그러면서 마음 한편에
'너에게 먼저 찾아가서 손 내밀고 평화를 구걸해야 하는 거냐?
아! 치사하다‘ 라는 마음도 있답니다.
제가 이렇게 인간적이랍니다.
마음의 평화도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세상에 공짜는 없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평화가 너희와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부활의 삶은 주님의 당부대로 용서를 할 때 완성될 것입니다.
부활을 체험한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한 사람만이 부활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완성을 위해 용서에 마음을 쓰는 오늘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