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위의 요한복음 15장의 두 말씀은 모순된 것처럼 들립니다.
농부이신 아버지께서는 열매 못 맺는 가지를 쳐내시는데 비해
포도나무이신 성자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당신 안에 머물라 하시고
당신도 우리 안에 머물겠다고 하시는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너무도 고마운 말씀인데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쳐 내신다는 말씀은
이해도 안 가고 듣기 거북합니다.
열매를 못 맺으면 하느님께서는 정말 가지를 쳐내실까요?
하느님께서는 정말 그렇게 무정한 분이신가요?
그러실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서는 말하지 않습니까?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어머니는 제 아이를 잊지 않는데
하느님은 아버지라 당신 자녀를 쳐 내시겠다는 것입니까?
오늘 복음 말씀의 주조는 주님께 붙어있으라는 말씀이고
주님께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호소이십니다.
열매 맺지 못하면 쳐내겠다는 엄포가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 안에 있어달라는 호소이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런 호소를 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관계없이 열매를 맺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무슨 일을 하고
특히 나의 사랑으로 사랑을 하려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일의 아무 보람이 없고
사랑의 아무 열매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단절로 인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말라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有情하신 하느님의 사랑의 호소입니다.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위의 요한복음 15장의 두 말씀은 모순된 것처럼 들립니다.
농부이신 아버지께서는 열매 못 맺는 가지를 쳐내시는데 비해
포도나무이신 성자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당신 안에 머물라 하시고
당신도 우리 안에 머물겠다고 하시는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너무도 고마운 말씀인데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쳐 내신다는 말씀은
이해도 안 가고 듣기 거북합니다.
열매를 못 맺으면 하느님께서는 정말 가지를 쳐내실까요?
하느님께서는 정말 그렇게 무정한 분이신가요?
그러실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서는 말하지 않습니까?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어머니는 제 아이를 잊지 않는데
하느님은 아버지라 당신 자녀를 쳐 내시겠다는 것입니까?
오늘 복음 말씀의 주조는 주님께 붙어있으라는 말씀이고
주님께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호소이십니다.
열매 맺지 못하면 쳐내겠다는 엄포가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 안에 있어달라는 호소이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런 호소를 하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관계없이 열매를 맺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무슨 일을 하고
특히 나의 사랑으로 사랑을 하려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일의 아무 보람이 없고
사랑의 아무 열매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단절로 인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말라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有情하신 하느님의 사랑의 호소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분 합니다.
동일한 말도 누구의 입에서 나왔느냐,
그러니까 그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냐에 따라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은 다르지요.
어머니의 애간장을 다 태우던 철없던 시절에
급기야 자식을 향해 다시는 안볼 듯이 토해내시는
원색적이고 단호함이 담겨있는 어머니의 의미심장한 억양에서
오히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싶습니다.
하지만 때론 철없는 생각으로 어머니가 원망tm럽고 미운 감정이 들 때
어머니의 약한 부분을 철저히 이용했던,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는 그 때가 떠오르네요.
하느님의 냉정한 만큼 준엄한 말씀을 어머니의 관계를 통해
조금 알아들으면서 더 이상의 가슴 아리는 일은 없어야 겠지요.
갑자기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누군가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오늘은 어린이 날
모든 어린이가 이런 행복을 맛보며 자랄 수 있었으면 하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