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6일, 아씨시
총회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남은 날들은 총규정 개정과 관련한 제안들과 주제별 위원회가 준비한 제안들에 대한 투표를 하는 데 할애될 것이다. 사실상 오전회의와 오후회의 첫 번째 시간은 온전히 이런 일을 하는 데 할애되었다.
오후 6시에 대의원들은 아씨시의 성녀 클라라 대성당에 갔다. 거기에서 형제들은 성녀 클라라의 최초 수도원 원장인 키라아 다미아노 자매와 그 공동체의 다른 클라라 자매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새로이 부총봉사자로 선출될 마이클 페리 형제가 주례한 성녀 클라라 기념 전례에서, 마이클 형제는 우리 프란치스칸 수도회의 제1회와 제2회 사이의 영적이고도 은사적인 깊은 일치에 대해 피력하였다.
전례 제1부에서 클라라 자매들 중 하나인 마리아 다니엘라 자매가 식별에 관한 고찰을 나누어주었다. 이 자매는 하느님께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에게 선물로 주신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했던 이 두 사람의 부단한 추구 때문에 이들의 호소가 얼마나 잘 하느님께 가납되었는지를 강조하여 말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식별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매우 명료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축성된 공동체 안에서의 절정적 순간 중 하나이다. 사실 이 하느님 중심성은 각 형제자매의 궁극적 목표일 뿐 아니라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있어 각 형제자매의 책임과 기여가 있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는 계속적인 식별의 과정 속에 있을 수 없다. 식별의 시간 이후에 순종의 시간이 뒤 따른다. 이 둘은 순종의 영(정신) 안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시간들이다.”
전례 제2부에서 마이클 형제는 우리 수도규칙 제16장을 해설해 주었는데, 특별히 만남의 복음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는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복음’이 가장 근본적인 의미를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이 부분을 말할 때 아주 힘차고 솔직한 말투를 썼다: 그 중심 내용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이와 똑같은 주제가 나환우와의 포옹과 같이 프란시스코의 매우 개인적이고도 내적인 여정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으로까지 펼쳐진 그의 삶에 있어 중심주제였다는 것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느님께서도 이와 똑같이 움직이시며 모든 인간 존재와 모든 피조물을 전적인 자유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행위로 끌어안으신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이러한 “움직임”은 같은 “살”을 나누고 있는 형제를 향한 한 형제의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변모되어야만 한다. 이는 우리가 “불의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어린아이들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데도 죽음을 당하게 되는 어린아이들의 어머니들 수백만 명의 울부짖음과; 에이즈로 죽은 부모들을 묻어야 하는 아이들의 눈물; 정치적, 인종적 분쟁과 통제되지 않는 무기 판매로 인해 부상을 당하는 이들의 피; 너무도 상처 받고, 위협 받고 있는 환경에 대해 항변을 하는 폭풍피해와 산불피해, 지진피해, 홍수피해 등에 대해 귀 기울일 방법을 알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가 전해들은 기쁜 소식이 모든 사람이 공유하게 되는 기쁨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다.
총회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남은 날들은 총규정 개정과 관련한 제안들과 주제별 위원회가 준비한 제안들에 대한 투표를 하는 데 할애될 것이다. 사실상 오전회의와 오후회의 첫 번째 시간은 온전히 이런 일을 하는 데 할애되었다.
오후 6시에 대의원들은 아씨시의 성녀 클라라 대성당에 갔다. 거기에서 형제들은 성녀 클라라의 최초 수도원 원장인 키라아 다미아노 자매와 그 공동체의 다른 클라라 자매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새로이 부총봉사자로 선출될 마이클 페리 형제가 주례한 성녀 클라라 기념 전례에서, 마이클 형제는 우리 프란치스칸 수도회의 제1회와 제2회 사이의 영적이고도 은사적인 깊은 일치에 대해 피력하였다.
전례 제1부에서 클라라 자매들 중 하나인 마리아 다니엘라 자매가 식별에 관한 고찰을 나누어주었다. 이 자매는 하느님께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에게 선물로 주신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했던 이 두 사람의 부단한 추구 때문에 이들의 호소가 얼마나 잘 하느님께 가납되었는지를 강조하여 말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식별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매우 명료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축성된 공동체 안에서의 절정적 순간 중 하나이다. 사실 이 하느님 중심성은 각 형제자매의 궁극적 목표일 뿐 아니라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있어 각 형제자매의 책임과 기여가 있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는 계속적인 식별의 과정 속에 있을 수 없다. 식별의 시간 이후에 순종의 시간이 뒤 따른다. 이 둘은 순종의 영(정신) 안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시간들이다.”
전례 제2부에서 마이클 형제는 우리 수도규칙 제16장을 해설해 주었는데, 특별히 만남의 복음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는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복음’이 가장 근본적인 의미를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이 부분을 말할 때 아주 힘차고 솔직한 말투를 썼다: 그 중심 내용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이와 똑같은 주제가 나환우와의 포옹과 같이 프란시스코의 매우 개인적이고도 내적인 여정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으로까지 펼쳐진 그의 삶에 있어 중심주제였다는 것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느님께서도 이와 똑같이 움직이시며 모든 인간 존재와 모든 피조물을 전적인 자유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행위로 끌어안으신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이러한 “움직임”은 같은 “살”을 나누고 있는 형제를 향한 한 형제의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변모되어야만 한다. 이는 우리가 “불의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어린아이들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데도 죽음을 당하게 되는 어린아이들의 어머니들 수백만 명의 울부짖음과; 에이즈로 죽은 부모들을 묻어야 하는 아이들의 눈물; 정치적, 인종적 분쟁과 통제되지 않는 무기 판매로 인해 부상을 당하는 이들의 피; 너무도 상처 받고, 위협 받고 있는 환경에 대해 항변을 하는 폭풍피해와 산불피해, 지진피해, 홍수피해 등에 대해 귀 기울일 방법을 알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가 전해들은 기쁜 소식이 모든 사람이 공유하게 되는 기쁨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