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다시'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니코데모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처럼
이미 태어난 사람은 어머니 배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의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우리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태어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로고스찬가는
말씀이신 빛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사람들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남을 뜻하며,
말씀이신 빛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닌 육이 잘못된 것이고,
그래서 그 육체를 벗어버리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매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며,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만 나의 욕심,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느님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의 육을 경계하면서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목표로 하는
하느님 나라의 삶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시'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니코데모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처럼
이미 태어난 사람은 어머니 배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의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우리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태어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로고스찬가는
말씀이신 빛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사람들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남을 뜻하며,
말씀이신 빛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닌 육이 잘못된 것이고,
그래서 그 육체를 벗어버리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매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며,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만 나의 욕심,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느님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의 육을 경계하면서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목표로 하는
하느님 나라의 삶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