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어제는 과도한 감정 이입, 곧 주관성으로 인해
이웃이건 자신이건 그리고 하느님이건,
존재를 객관적으로 아는 것에 실패하는 우리의 문제점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주관적인 주님 이해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어제에 이어 계속되는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얘기.
오늘도 어제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언자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제자들을 통해 들으신 다음,
그렇다면 제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님은 물으십니다.
그런데 이 물음,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는 물음이
오늘 제게는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정답을 묻는 것으로 들리지 않고
“너에게 나는 누구냐?”는 의미를 묻는 물음으로 들립니다.
그러니까 객관적인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주관적인 예수 그리스도 이해 말입니다.
아무리 다른 집 엄마가 훌륭해도
내게는 내 엄마가 최고이고 유의미하듯,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론적으로는 어떤 분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분이건 간에
그분이 내게 어떤 분이신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저의 예수 그리스도 편력과 관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늘 같은 분이시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저의 인생과 궤를 같이 하며 달라지셨습니다.
젊은 날의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중심적이었습니다.
인간 예수가 매력적이었고 제가 닮고 싶은 한 인간이었습니다.
제게는 Humanism의 예수, 혁명적인 예수, 자유로운 예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신이신 그리스도에 상당 기간 빠졌습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 영향권에 있지만
매우 그리스도론, 곧 신학적이고,
우리 학문으로 치면 성리학적인 그리스도입니다.
지금은 전에 보다 통합적이어서
하느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곧 신인(神人)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강림으로서,
육화하신 사랑,
내 곁에 계시는 사랑,
하느님 사랑의 현현이며 현재이십니다.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의 겸손이
기적을 일으키시는 능력의 주님보다 더 가슴에 와 닿아
이렇게까지 겸손하신 주님의 사랑에 벅차기도 하고
교만한 저를 한껏 부끄러워하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육화도 기적도 다 사랑일 뿐입니다.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아서 탈일 정도입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의 예수 그리스도, 사랑의 주님이 좋습니다!
인간의 모든 삶에 오셔서 말씀 하셔서 어느 변명도
필요 도없으며 언제든지 나아가면 받아 주시는
최고의 사랑이시고 다만 그 분께서 살아게시기 때문에
살 희망 ,인간임을 감사드립니다.